드디어 지난 9일 밭에 흙을 넣었다. 퇴직 후 귀농을 준비하면서 논을 밭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난해 처음으로 흙을 넣고 올해가 두 번째다. 오랫동안 이 땅은 물을 가두어 벼농사를 지으며 땅이 다져졌기 때문에 흙 입자가 아주 고와 물을 가두면 고운 흙이 물을 다 먹어 벼가 자랄 수 있었던 환경이였다. 그래도 논에서 마늘 재배가 가능하다고 들어 시도해보려 했지만 막상 땅을 파보니 불가능했다. 그제야 논에서 밭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흙을 넣어야 한다는 걸 알고 물어물어 흙을 넣어 지난해 첫 밭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흙을 부었음에도 워낙 오랫동안 벼농사를 짓던 땅은 비가 조금만 와도 푹푹빠지며 질퍽거려 장화를 신고 걸음을 옮기기 어려웠다. 흙을 부었어도 그 밑은 지난 세월동안 물을 가두면서 잘 만들어진 흙덩어리들이 똘똘 뭉쳐 비만 오면 빗물이 머무는, 물이 가두어진 상태인거다. 물이 가두어져 있으니 작물들의 뿌리가 물에 닿으면 자라지 못하고 썩어, 지난해 우리는 땅의 절반도 농사를 짓지 못했다.
올해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흙을 좀 더 넣어 작물의 뿌리가 물이 고이는 지점까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땅을 높여야 되기에 한번 더 흙을 넣기로 남편과 결정하고도 이런저런 걱정들이 앞섰다. 사실 지난해 흙을 넣을 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흙을 넣으려면 덤프트럭으로 흙을 옮겨야 하는 운반비, 흙값, 그리고 포크레인으로 흙을 고르게 펴야 하는 작업까지, 모두 비용이 발생한다.
밭농사를 짓기로 계획하고 나름 꼼꼼히 준비했지만 역시 현장에서는 달랐다. 흙은 사실 예상치도 못했던 부분이고, 비용 때문에 지난해 흙을 조금밖에 넣지 못했었다.
어차피 한 번은 더 흙을 넣어야 한다고 결정한 이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그래도 귀농해 농사를 지으며 한해가 지나니 주변에 아는 분들이 생기면서 관심을 가져주신다.
‘한수원에서 흙을 반출한댜...한번 확인해 봐….’ 동네 어르신이 알려준다
눈이 반짝, 면사무소에 전화해서
‘혹시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에서 흙을 받을 수 있나요?’
면사무소 직원은 한 번도 신청받아 본 적은 없는데, 한수원과 군청에 확인해서 알려주겠단다. 그리고 얼마 뒤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나는 너무 기뻤다. 비용도 절감되고 군청에서 연결해 주는 거니 일정 확인도 정확하게 안내받을 수 있어서다. 지난해 흙을 넣을 때 아는 이 없이 어렵게 흙을 넣으면서 남편도 나도 몹시 지쳤던 기억이 있어서다.
울진에서는 지금 신한울 3·4호기가 건설 중이다.(정확한 위치: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천리 및 고목리 일대) 한수원에서는 굴착 공사장에서 나오는 흙 일부를 근처 농지에 성토(농사짓는 땅에 흙을 부어 땅을 높이는 것)가 필요한 농가로 반출하고, 원자력발전 건설공사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상생하기 위해 농가로 반출되는 흙에 대해서는 일정 금액을 부담해 주고 있다. 공사장에서 우리 땅은 거리가 좀 있어 안될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가능하다고 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면사무소에 가서 신청서를 쓰고, 며칠을 기다리니 한수원 담당이 현장으로 나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땅을 보고 흙이 정말 필요한지,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현장 확인을 하는 과정이다. 현장에서 우리는 덤프트럭 54대분을 넣으면 40cm 정도 흙을 돋울 수 있겠다고 협의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논이나 밭에 흙을 부어 땅 높이를 올리는 걸 ‘성토 작업’이라고 하는데 50cm 이상 성토 작업을 할 경우 반드시 군청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한다..)
이제 흙을 넣을 날짜만 정하면 되지만, 건설 공사장에서 굴착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흙을 넣을 수 있는 일정을 잡을 수 있어, 또 며칠을 기다렸다.
2월 2일(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한수원 담당이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자부담 비용을 안내하는 문자다.
공사장에서 밭까지 거리는 편도 17km로, 덤프트럭 1대가 하루에 6회를 운반할 수 있다고 해 54회 흙을 부으려면 9대의 덤프트럭으로 움직여야 했다. 비용은 한수원에서 59%, 우리는 41%를 부담하고 총 702㎥(루베)를 넣어(덤프트럭 1대에 흙이 13루베를 담는다) 운반비를 포함해 260만 원이다.(포크레인 2대 비용 140만원은 별도임, 만약 지난 해처럼 이 정도의 량의 흙을 넣었다면 750만원정도 들었을 거다.)
아침 8시에 첫 덤프트럭이 밭에 도착한다는 연락를 받고 7시 30분부터 우리는 밭에 가서 땅에 들어올 흙을 기다렸다. 멀리 보이는 트럭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여보...왔다...트럭이 왔어...”
덤프트럭에서 흙을 땅에 쏟으면, 포크레인 앞에 달린 장비로 흙을 한번 거른다. 고운 흙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큰 돌덩이(축구공크기 이상)들은 따로 빼는 작업이 이어진다. (사실 건설 공사장에서 흙을 받는 건 복불복이다. 땅에서 나오는 흙이 돌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을 고르는 작업을 1차로 해야 한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흙 넣기 작업은 오후 5시까지 덤프트럭이 54번 다녀가면서 끝이 났다.
흙을 부어 고르게 평탄화 작업(흙을 붓고 바닥을 고르게 고르는 작업)까지 마친 풍성한 밭을 한참 흐뭇하게 바라봤다. 흙을 넣었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이 흙에서 올해 농사를 짓기 위해 다시 또 일정을 잡고 할 일이 많다. 트랙터를 빌려 땅을 깊게 파서 흙을 뒤집고 뒤집은 후 로터리 작업(흙덩이를 곱게 부수며 섞어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흙과 흙 사이에 숨구멍이 생기고 퇴비를 섞으면서 흙 속으로 영양분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땅과 흙이 좋아 귀농하기로 결심했고, 이제 충분한 흙으로 제대로 농사를 지을 것 같아 큰 걱정을 덜었다. 지난 한 해동안 속앓이를 보상받은 기분이다. 13일(금)에 ‘농기계임대사업소’에서 예약해 둔 장비가 오면 흙먼지 뒤집어쓰며 흙들을 섞어보겠다. 초보농사꾼 2년차 부부가 진정한 농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