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겨울 장만할 패딩보다 낡은 동생 운동화가 먼저다.

’아무래도 우리는 전생에 같은 방을 쓴 무수리였나 봐‘

by 선심화

며칠째 동생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한참 전 동생이 주말에 조카랑 대형마트를 다녀온다고 했다. 다녀와서 집에 놀러 오겠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생에게 “신발 좋은 거 샀어?”

했더니 “내 꺼 아니야. 희지(가명) 꺼 샀어 개학이잖아, 개학하니 새 신발 필요해서 하나 샀어.” 한다.

“네 꺼 산다고 했잖아”

“내 순서는 멀었어. 희지(가명) 꺼 먼저 샀어.”

260306 낡은운동화.jpg 동생의 낡은 운동화

동생은 결혼해서 오랫동안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딸 하나를 키우며 외벌이로 살았다. 아껴 쓰고 절약하는 게 몸에 배어 간혹 속상할 때도 있다. 동생과 나는 9살 차이가 난다. 동생과 나의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고 잠시 끊어지고 한세월이 벌써 30년이나 되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해야 하나?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생이 대학교에 원서를 내던 그해 맏이인 나는 결혼해 서울 성수동 지하방 두 칸에서 첫 살림을 시작했다. 지하방 두 칸에 어른 세 명 앉으면 엉덩이 부딪치는 작은 통로와 개수대 한 칸짜리 싱크대가 전부였다. 등 붙일 방이라도 있어야 도시로 대학을 보낼 수 있었던 친정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엄마는 동생을 내가 있는 서울로 보냈고, 동생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나의 첫 살림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동생은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와 같이 지내다 결혼하면서 잠시 헤어졌다. 결혼하면서 동생은 내게 ’언니, 내가 다시 언니 옆으로 올게. 좀 기다려봐, 다시 올게.‘ 헤어지는 게 서운해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이듬해 아이를 낳고 동생은 시아버지, 남편, 조카아이와 정말 내가 살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같은 아파트 그것도 같은 동 2층에 동생이 살고, 4층에 내가 살면서 다시 자매의 동거 아닌 동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층과 4층을 오가며 동생은 우리 아이 둘과 조카아이, 이렇게 셋을 양육하고 출퇴근하는 언니의 살림까지 대신 해줬다. 그렇게 아래위층으로 동생과 같이 살면서 지지고 볶는 일들이 참 많았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같이하며 동생은 나의 희로애락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제는 남편보다 나의 가려운 곳을 더 잘 긁어준다. 재주가 많고 눈치도 빠른 동생이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게 나는 늘 마음에 걸렸다. 밖으로 나가 직장에 다니면 좋을 텐데 하는 속내가 있어도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니 외동딸이 다 클 때까지 직접 양육하겠다는 동생의 확고한 신념은 존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언제나 든든한 내 편, 아군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일단 한 수 깔고 들어간다. 나에게 동생은 그렇다. 퇴직하던 날, 동생이 유명 커피숍 상품권 10만 원짜리를 카톡 선물하기로 보내주면서 ’언니, 나는 돈이 없어 퇴직 선물 큰 거 못 해줘, 이거로 커피 한 잔 마시고 언니 좋아하는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해. 언니는 충분히 쉴 자격 있어 그동안 수고했어‘ 라고 했다. 가성비 따지며 집에서 내려 먹는 드립커피 대신 카페 가서 사람 구경하며 시간 보내라는 마음을 담은 배려의 선물이다.


외동딸 하나를 다 키워놓고 뒤늦게 동생은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현재의 직장을 다니고 있다. 최저시급 정도의 적은 월급이지만 경단녀치고 이런 일자리 없다며 사람들과 어울리며 돈 버니까 좋단다. 외벌이로 늘 알뜰히 살다 직접 돈 벌어도 늘 우선순위는 하나뿐인 딸과 남편, 뒷순위로 밀린 동생의 운동화가 영 마음에 걸린다. 내년 겨울 패딩 하나 사 입으려 깊숙이 넣어둔 상품권(퇴직하면서 받은 선물)을 꺼내야 하나 그러기를 며칠….

260306 상품권.jpg 동생에게 운동화 사라고 준 상품권...

오늘(6일), 퇴근하고 온 동생에게 상품권 한 장을 내밀며 “꼭 가서 네 운동화 사서 와”

“괜찮아. 아직 신을 만해”


돌아보면 지난 세월 동생과 나는 늘 이랬다. 직장 다니며 애 둘 키우는 언니를 위해 집안 일 하나라도 더 해주고, 같이 마트에 장이라도 보러가면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아니까 조카에게 담고 싶은 거 3개 담으라고 해 대신 계산해 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내면서 서로를 보듬었다.


새 신발을 신고 씩씩하게 출근할 동생을 떠올리면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눈에 보인다. 어떻게 걸어갈지…. 동생과 나는 앞으로도 딱 지금처럼,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같이 늙어갈 거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우리는 전생에 같은 방을 쓴 무수리였나 봐‘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2583&PAGE_CD=C1500&CMPT_CD=S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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