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이 된 할머니를 추억한 오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뜻밖의 사람을 만나 따뜻한 하루가 됬다.

by 선심화

퇴직 후는 통장에서 새는 돈을 찾아 잘 정리해야 한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 대신 정해진 연금만이 수입이기 때문에 소비 습관도 재정립해야 한다. 비단 돈만 그런 게 아니다. 시간도 그렇다. 늘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직장에 머물던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퇴직 후 온전히 주어진 24시간 앞에서 아직도 가끔 당황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없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불편한, 오늘이 그런 날이다.


고향이 바다 근처여도 나는 물을 무서워해 수영을 하지 못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 혼자 수영을 하지 못해 밖에서 쳐다만 보기가 민망해 수영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쯤, 뜻밖에 남편이 먼저 제안했다.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서 수영을 배우는 게 좋다며 본인이 가르쳐 주겠다고 자청했다. 남편이 실내 수영장 유아 풀에서 물속에 머리 집어넣는 것부터 하나하나 가르쳐 주기를 2년, 이제는 혼자서도 수영장을 다닐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수영을 배웠다. 그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불편한 오늘 오랜만에 수영장을 찾았다.


모처럼 찾은 수영장, 평일인데도 여전히 자유 수영 시간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 중에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오래전 주민센터에 근무할 때 지역노인복지관 생활관리사를 하던 분이다. 업무를 하면서 만나게 되었지만 나보다도 연배도 높고 온화한 미소가 참 따뜻했던 분이다. 복지관 생활관리사(현재 명칭: 생활지원사)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를 수행하는 업무를 하시는 분들이다. 주로 지역 내 독거 어르신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주민센터로 알려 협력 사업으로 일을 해결하곤 해서 자주 만나 어르신들의 생활 실태를 공유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예전 곤욕을 치른 한 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많은 사례를 겪었지만, 그분도 나도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된 김00 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 1인 독거 어르신이지만, 주민센터도, 복지관도 관리 대상 범위 안에 들지 않는 어르신이었다. 동네에서 괴짜 욕쟁이 할머니로 소문난 어르신은 다가구주택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며 온 동네 쓰레기란 쓰레기는 모두 집으로 모으고 계셨다. 주변에서 악취와 비위생적인 관리 상태로 계속해서 주민센터로 신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 소유의 집안에 물건을 두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어르신을 상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하루, 자그마한 키에 뒷짐을 지고 위태롭게 걸어 다니는 할머니를 따라 다녀봤다. 이 골목 저 골목 내놓은 쓰레기만 뒤진다. 그러다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들고선 다시 위태로운 걸음을 집으로 향하기를 반복했다. 반나절을 따라 다녀보니 점심을 안 드시는 걸 알게 됐다. 당시, 주민센터로 발령받고 동네 이상한 할머니 한 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바로 이 할머니였다.


사실 처음부터 할머니에게 관심을 가진 건 아니다. 맡고 있는 업무도 많은데 관리 대상도 아닌 동네 소문난 한 할머니에게 할애할 시간적 여유가 사실 없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주기적으로 민원신고가 들어오고 혹여 할머니 신변에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주민센터 업무 담당은 뭐했나라는 책임 여부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 따라 다녀보고 식사를 하지 않는 할머니가 계속 생각이 났다. 할머니 집 주변을 방문해 할머니의 사정을 들어봤다. 남편과 자녀가 한 명 있었는데 두 분 모두 일찍 사망하고 지금껏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찾아오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주변에서 관심이라도 가지면 욕하고 소리를 지르신다고 했다.


책임감으로 할머니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할머니와 아주 작은 소통이 시작될 무렵, 할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할머니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경찰서에서도, 병원에서도, 주민센터 담당자를 찾았다. 그렇게 할머니의 담당자가 되었다.


교통사고 이후 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흐려지고 위태로운 걸음마저도 이제 걸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 할머니의 세 끼를 누구도 챙겨줄 수 없어, 복지관 생활관리사와 주변의 도움으로 순번을 정해 들여다보기를 여러 달, 할 수 있는 방법을 전부 동원해 확인해도 할머니는 혼자였다. 할머니도 나도 이대로는 계속 버틸 수가 없다고 판단해 법원에 성년후견인 제도를 알아보고 절차를 진행했다.


할머니의 기억 저편에 있는 먼저 하늘나라로 간 어린 딸 얘기 듣기를 수십 번 하면서 담당자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 할머니가 안전하기를 누구보다 바라게 됐다. 지금의 주거 상태로는 할머니가 안전할 수 없었고(쓰레기 더미인 집안, 썩은 음식물만 가득한 냉장고,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 성년후견인이 선정되는 동안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하고 주민센터 차량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요양원으로 가던 날, 그날을 나도 생활관리사도 잊을 수 없다.


누구의 관심도 없이 홀로 반지하 주택에서 보낸 세월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1년 반 동안 살펴준 나와 생활관리사를 멍하니 바라보며 차량에 올랐다. 대소변이 힘들어 기저귀를 채우고 미리 세탁소에서 세탁을 해둔 할머니 고운 옷을 입히고 요양원으로 입소하던 날, 나는 여기가 할머니의 마지막 안식처라는 걸 알았다.


이후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받았고, 후임자에게서 변호사가 후견인으로 지정됐고 앞으로 할머니의 관리는 후견인이 하게 된다고 전달받았다. 두 해가 지나 다시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지금도 내게 할머니가 딱 한 번 얘기해 준 ’고마워‘를 잊을 수 없다. 요양원으로 가기 위해 어렵게 할머니와 소통을 이어가던 중 동의서에 도장을 찍을 때였다. ‘동 직원, 고마워‘라고 하셨다. 냄새나는 지하방에서 나와 생활관리사는 할머니를 부여안고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를 기억하는 생활관리사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오늘 우연히 수영장에서 만나, 가슴 저미도록 보고 싶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소환했던 아주 따뜻한 오후였다.


’할머니, 보고 싶네요. 사랑 듬뿍 받는 행복한 집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했어요.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3248


작가의 이전글아버지와 여행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