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물으면

by 조대식

사는 동안 가끔 아니 자주

나를 끌어줄 말들이 필요했다

그냥,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

살자

어느덧

성큼 다가온 겨울 앞에서

살아보니 살기를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불편했던 가면에 눌린 자국을

괜찮다 괜찮다 쓰다듬는다

꼭 붙들고 살았던

말의 고삐를 놓으며

잘했다 잘했다 토닥거린다

얼마 안 있어 눈이 올 텐데

내가 나를 안아주지 않으면

누가 할 건가


여름은 몹시 뜨거웠습니다. 장마는 길었고, 태풍은 거칠었습니다. 용케 여름을 넘고 가을을 건너 겨울에 도착했습니다.

겨울 앞에 이르러 비로소, 뜨거웠던 폭염과 장마와 태풍의 시간이 연단의 기회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고난의 동굴을 지나 여기까지 온 것이 나의 수고로 된 것이 아니라 은혜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더라도, 목마름을 참고 비바람에 견디며 주저앉지 않고 걷느라 수고한 나에게,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로 속삭입니다.

잘했다.

이만하면 됐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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