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수영의 돌

by 오소리

by 오소리

3장. 수영의 돌

  그날은 봄비가 부드럽게 스친 뒤였다. 젖은 흙냄새가 창틈을 흔들며 들어왔고, 교실 안은 국어책 낭독 소리로 잔잔하게 움직였다. 아이들이 한 문장을 두고 장난스럽게 읽다 보니 곧 언성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다’를 ‘바람이 안 분다아~’라고 읽으면 어떡해.”
  “내 맘이야. 재미있잖아.”
  “시끄러워.”

  상희가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수영이 책을 책상에 탁 내려놓았다.
  “너나 잘해!”

  공기가 순간 얼었다. 정원의 손끝에서 분필 가루가 떨어지며 멈췄다.
  “수영아, 지금은 수업시간이야.”
  “싫어요. 선생님은 맨날 나만 뭐라 하잖아요.”
  “그건 네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영은 의자를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도 나 싫잖아요.”

  그 한마디가 교실 공기를 가르는 칼날처럼 떨어졌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원을 향했다. 수영은 문을 쾅 닫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아이들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정원은 천천히 교탁에 분필을 내려놓았다.
  “얘들아, 잠깐 조용히 하자.”
  아이들은 숨을 끊듯 조용해졌다. 수업을 마친 뒤 정원은 홀로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빗방울은 이미 그쳤지만, 땅 위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텃밭 앞에 도착하자 두 개의 모종삽이 흙에 기대어 있었다. 정원은 조심스럽게 흙 위에 발을 디뎠다. 촉촉한데도 차가운 감촉. 그 차가운 흙이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이 아이는 사람의 손길을 얼마나 피하며 자랐을까.'
  '근데 왜… 나는 또 이렇게 서운할까?'

  정원은 허리를 굽혀 흙 한 줌을 손에 쥐었다. 촉촉한 알갱이들이 손바닥에 차갑게 들러붙었다. 사람에게서 얻지 못한 온기가 흙에서 건너오는 듯했다.

  저녁, 일기를 쓰다 말고 정원은 펜을 내려놓았다.


  아이를 이해한다는 건… 그 아이의 분노가 내 안의 상처를 건드릴 수도 있음을 감당하는 일이다.


  그녀는 그 문장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

  창문을 열자 봄밤의 냄새가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도 텃밭의 흙은 미세하게 윤이 나며 살아 있는 듯 보였다.
  “괜찮아, 아직 봄이니까.”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 말은 아이에게 하는 위로였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향한 작은 약속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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