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소리
교무실 난방기에서는 미지근한 바람이 흘렀다. 그 옆자리 교사는 잠깐 정원을 흘끗 보더니 다시 서류철로 눈을 내렸다. 초등학교 교무실 특유의 고요 속에서 종이가 스치는 소리만 얇게 흔들렸다. 정원은 자신의 결재 바구니를 확인했다. 또렷한 붉은 글씨로 ‘반려’ 두 글자가 찍혀 있었다. 사유란에는 단 한 줄.
“교무회의 사전 협의 없음.”
최근 몇 주 동안 서류는 같은 이유로 반복해서 돌아왔다. 정원은 숨을 삼키며 휴대폰을 켰다. 화면 상단에는 아직도 고정된 메시지가 있었다.
“너무 춥다. 교감이 대화조차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문장을 다시 보는 순간, 손끝이 얼얼하게 식어갔다. 말은 짧았지만, 그 말 뒤에 서 있던 두려움과 침묵의 공기가 몸속 깊은 곳에 닿았다.
며칠 전, 교감과의 면담이 생각났다. 교감은 서류철을 넘기며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유 부장, 이 건은 학년에서 먼저 정리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업무 절차를 얘기하는 목소리였지만, 정원은 그 뒤에 숨은 뜻을 읽어야 했다.
“운영위원장님도 요즘 학교 일에 관심이 많다”는 말은 지나가는 언급이 아니었다.
지금은 올리지 말라는 거구나.
며칠 후, 교장실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교장은 서류를 펼쳐두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유 부장, 이런 건 담임과 학년부에서 먼저 교통정리가 되어야지요. 괜히 일이 커지면 학부모 간에도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위원장님 가정이 관련된 일이라 더 조심해야 합니다.”
정원은 대답을 삼켰다. 교장은 다정한 말투를 유지했지만, 말과 말 사이의 빈 공간이 말하고 있었다.
부장이 너무 앞서면 안 된다. 이번엔 네가 멈춰라.
얼마 뒤, 부장단이 사용하던 책상들이 교무실로 옮겨지고, 정원의 책상만 홀로 교과전담실에 남았다.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너는 여기서 떨어져 있어라.
그리고 공개수업 전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보고서를 올린 바로 그날 오후, 담임교사가 정원에게 찾아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감 선생님이… 내일 공개수업 취소하라고 하셨어요.”
“왜?”
“잘은 모르겠는데… 메시지로 보내게 됐어요.”
정원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어린 교사도… 나와 같은 벽을 마주했겠지.
지금, 교무실로 돌아온 현실 속에서 정원은 묘한 냉기에 사로잡혔다. 누구도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강요한 적은 없었다. 단지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슬며시 흘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정원은 곧 눈치챌 수 있었다.
멈춰라.
말하지 않은 그 메시지가 그녀를 향해 있는 것을.
그 후로 정원이 올린 결재는 이유 없이 계속 반려되었고, 어느새 “유 부장이 요즘 일을 밀린다”는 소문이 은근히 퍼지기 시작했다.
정원은 창문을 열었다. 복도의 공기가 교무실로 흘러 들어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먼지 냄새, 어디선가 낯익은 흙냄새가 함께 들어왔다.
흙은 차갑게 굳어도 사람처럼 냉정하지는 않아.
그때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선생님, 텃밭 가요?”
상희였다.
“지금? 벌레 많을 텐데?”
“그래도 오늘 날씨 좋잖아요.”
상희의 웃음은 얼어 있던 곳을 천천히 풀어줬다. 정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텃밭으로 향했다.
텃밭은 여전히 풀숲이었지만, 햇살은 전보다 따뜻했다. 정원이 삽을 들며 말했다.
“애들아, 돌 많은 데는 감자가 잘 자라.”
승욱이 물었다.
“진짜요?”
“응. 아니… 돌은 골라내야지. 그래야 뿌리가 곧게 뻗어.”
정원은 삽으로 흙을 뒤집었다. 작은 돌들이 우두둑 흘러나왔다. 조용히 하나씩 골라내며 생각했다.
아픈 마음도 이렇게 하나씩 꺼내야 숨을 쉬겠지.
그때 승욱이 다가왔다.
“선생님은 왜 돌만 봐요. 뭐 있어요?”
정원은 웃지 않았다. 손끝에서 굴러가는 작은 돌을 바라보며 속으로만 말했다.
'단단해지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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