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봄: 씨앗의 계절 5장. 리본 사건

by 오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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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리본 사건

5장. 리본 사건

5장. 리본 사건5장. 리본 사건55장 장 리본 사건

5장. 리본 사건

5장 리본 사건


 체육관 천장은 낮게 울렸고, 리본이 공중에서 원을 그릴 때마다 먼지와 햇빛이 금빛으로 흩어졌다. 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팔을 어설프게 돌렸고, 정원은 그 모습을 보며 박자를 맞추었다.

“왼손, 하나 둘 셋 넷, 오른손, 천천히— 좋아.” 분위기는 처음엔 산만했지만 서서히 리듬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리본이 서로 엉키자 금세 투덜거림이 터져 나왔다.

“야, 내 리본 밟았잖아!” “네가 먼저 돌렸잖아!” 작은 갈등이 여기저기 번지던 찰나, 상희가 리본 끝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툭 내뱉었다.

“승욱이는 얼굴이 무서워서 리본이 도망가겠다.”

아이들 몇 명이 피식 웃었다. 정원은 그 웃음을 듣는 순간, 가벼운 장난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짝 깎아내리고 자신을 올려놓으려는 기류가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상희는 늘 중심에 서 있던 아이였다. 집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그런데 요즘 정원이 승욱에게 “좋았어”라고 말하는 순간만 유독 크게 보였다. 나는 늘 잘하는데… 왜 선생님은 저 아이를 더 보는 것 같지? 상희 마음속 작은 불안이 튀어 오른 순간이었다.

 승욱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얼굴을 들지 못했다. 리본을 쥔 손등은 하얗게 굳어 있었고, 그 모습은 상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상희는 잠깐 멈칫했다. 내가… 저런 표정을 만들었나? 하지만 그 생각을 끝까지 밀어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정원은 조용히 상희 쪽으로 걸어갔다.

“상희야.”

상희는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 그 말… 너 화가 나서 한 거야? 아니면 웃기고 싶어서?”

“그냥 장난이었어요.”

“장난은 둘 다 웃을 때 하는 거야.”

정원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단했다. 상희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금방 사라질 줄 알았던 말이 누군가에게 박혀 남는다는 사실이 가슴 한쪽을 묵직하게 눌렀다.

 정원은 이제 승욱에게 다가갔다.

“승욱아.”

“…네.”

“아까 상희가 미안하다고 했어.”

승욱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정원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나는 네 표정이 제일 멋있더라. 네가 웃으면 반 애들도 따라 웃어.”

승욱의 손이 리본 끝을 만지작거렸다.

“…제가요?”

“응. 너 표정엔 힘이 있어.”

승욱은 아주 작게 말했다.

“형이… 저보고 맨날 못생겼대요. 웃으면 더 못생겼대요.”

정원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엄마 아빠의 이혼 이후, 형과 둘이서 할머니 집에 머물며 밤마다 나누던 야식, 그때 나온 장난스러운 말들이 승욱에게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주석처럼 남아 있었다. 그래서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가리듯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복도조차 불편했다. 상희의 말이 ‘장난’이어도 더 아프게 꽂힌 이유였다.

“승욱아, 너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표정이 있어. 선생님은 그게 참 좋아.”

 승욱은 모자를 고쳐 쓰며 아주 작게 말했다.

“선생님… 그럼 텃밭할 때 삽질 제가 해도 돼요?”

정원은 미소를 지었다.

“응. 네가 제일 잘할 것 같아.”

 아이들이 리본을 바구니에 모아 넣는 동안, 상희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단한 줄 알았던 자신의 말이 누군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마음 한쪽에서 따끔거렸다. 정원은 체육관 문으로 나가는 상희를 불러 세우지 않고, 느리게 기다렸다. 결국 상희가 먼저 다가왔다. “선생님…” 목소리는 평소의 당당함이 없었다.

“승욱이한테… 너무 심했어요?”

정원은 상희의 눈을 보았다. 질투, 미안함, 당황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상희야, 네가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거 선생님 알아. 너도 중요한 사람이야. 근데… 진짜 리더는 누구를 낮추지 않아도 중심에 서는 사람이지.” 상희의 눈이 아주 작게 떨렸다. 리더. 그 말은 상희 마음 깊숙한 곳에 조용히 가라앉았다.

 교실로 돌아오는 길, 상희는 친구들 뒤에서 조용히 걸었다. 그 뒤모습을 보며 정원은 창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두려움과 용기가 동시에 흔들리는 얼굴. 흙처럼 사람도 상처를 품고 자란다. 흔들린다고 나쁜 게 아니다. 다시 서면 된다. 정원은 일지의 빈 페이지를 펴고 글을 천천히 적었다. 창밖 멀리, 텃밭 한쪽에서 승욱이 혼자 모종삽질을 하고 있었다. 작은 어깨 위로 햇살이 낮게 흘러내렸고, 아이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다시 흙을 다졌다. 그 모습은 서툴렀지만 묘하게 단단했다. 쓰러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손끝마다 묻어 있는 듯했다. 정원은 아주 작은 숨처럼 속삭였다. 그래… 너도 버티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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