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첫 삽

by 오소리

by 오소리

6장. 첫 삽

  월요일 아침, 정원은 칠판 한가운데에 커다란 글씨를 썼다. 〈우리 반 텃밭 회의〉라는 제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람은 아직 찼지만, 교실 안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아이들은 웅성거리며 자리에 앉았고, 정원은 잠시 그 활기를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얘들아, 지난주에 말했던 텃밭 기억하지?”
  “네에—”
  “오늘은 진짜로 우리가 심을 작물을 정해보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선생님이 정해요?”
  “아니. 이번엔 우리 반이 스스로 결정해. 다수결로.”
  정원은 분필로 칠판에 상추, 감자, 고추, 방울토마토 네 가지를 적었다.
  “자, 뭐가 좋을지 생각해보자.”

  아이들 사이에서 손이 올라갔다.
  “상추요! 바로 따서 싸 먹을 수 있잖아요!”
  승욱이도 손을 들었다.
  “감자요. 땅속에서 자라니까 캐는 맛이 있죠.”
  잠시 후, 수영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전… 방울토마토요.”
  정원은 살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왜 방울토마토가 좋아?”
  “그냥… 예뻐서요. 물 줄 때마다 크는 게 보여서.”
  아이들이 웅성거렸고, 어느새 분위기는 방울토마토 쪽으로 기울었다.
  “좋다!”
  “우리 반은 방울토마토 하자!”
  손들이 우르르 올라갔다.

  정원은 웃으며 말했다.
  “좋아, 결정! 우리 반의 첫 작물은 방울토마토야.”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정원은 그 모습을 보며, 함께 결정한다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오후, 아이들과 운동장 뒤편 텃밭으로 나갔다. 삽, 물뿌리개, 모종판, 장갑들이 아이들 손에 들려 흔들렸다.
  “선생님! 삽이 너무 커요!”
  “괜찮아. 삽질은 힘이 세면 더 잘돼.”
  승욱이 장갑을 끼고 말했다.
  “저 해볼게요.”
  아이의 삽날이 땅을 힘껏 파고들었다. 철컥—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승욱은 잠시 움찔했지만 곧 활짝 웃었다.
  “돌 많아요!”
  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 많으면 흙이 단단해져. 감자 같은 건 더 잘 자라지.”
  승욱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 반 흙 진짜 좋은 거네요!”

  잠시 뒤, 상희가 물뿌리개를 들고 뛰어왔다.
  “선생님, 물 너무 많이 주면 썩어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한 번 줄 때 충분히 줘야 식물이 갈증 안 나요.”
  정원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상희가 오늘부터 물 관리 책임 맡아볼래?”
  “네! 저 물반장 할래요!”
  작은 환호가 터졌다.

  정원은 아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키지 않아도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흙을 고르고, 삽을 나누고, 씨앗을 묻었다. 새삼스럽게 놀랍고 따뜻했다.
  승욱은 모종을 꽂으며 말했다.
  “이거 방울토마토니까 빨갛게 익으면 우리 같이 따요.”
  그러자 상희가 외쳤다.
  “그날은 파티하자!”
  웃음이 텃밭 위로 퍼졌다.

 정원은 삽을 세워두고 잠시 눈을 감았다. 햇살이 흙 위에서 반짝였고, 아이들의 웃음이 바람에 흔들렸다. 오래전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마음이 다시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돼.
  손바닥의 흙을 털어내며 정원은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애들아, 우리 텃밭… 오늘부터 진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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