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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티 Mar 13. 2024

나의 알바 일대기

일이란 무엇일까

 24살, 2학기 남짓 남기고 1년 휴학중인 대학교 4학년인 나. 4년 동안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한 자리를 빙빙 도는 것 같은 답답함에 무작정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홀로 나와 있으면서, 세상을 달리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4년 동안 쳇바퀴를 도는 듯한 대학 생활을 했다. 남은 1년 반 동안은 보다 넓게 세상을 경험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맞이하기를 바라고 있다.


자취를 하니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벌고자 알바 공고를 들춰본다. 성인 이후 몇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수능이 끝나고 바로 아르바이트에 뛰어드는 친구들이 대단해 보였다. 성인이 되었지만, 작은 알바 자리지만, 사회인으로서,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뛰어 드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알바 앱이 아닌, 대학교 안에서 첫 알바를 구했다. 21살, 대학교 2학년 때 과사무실 근로를 했다. 일주일에 약 9시간 일을 했는데 용돈을 벌기 꽤 좋았다. 주 업무는 조교님 심부름이나 수업 보조, 전화 받기 등으로 간단했다. 사무 알바 특성상 계속 앉아있는 것이 좀 지루하긴 했다.


21살 10월, 용기를 내어 피자 프랜차이즈 주방보조 알바를 지원했다. ‘급구’ 라고 적혀있던 것이 기억이 난다. 20대 초반에 아르바이트를 구한 것은 별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많고, 그저 한번 대학생 신분으로 알바라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서였다. 진로, 취업에 대해, 그리고 더 나아가 ‘일’이라는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경험 없는 어린 나였다. 20대 초반, 나의 시간은 방향 없이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첫 알바인 피자 주방보조는 나에게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1년, 학교를 거의 못가고 답답한 마음에 알바라도 해보자고 덜컥 지원했던 알바였다. 첫 알바라서, 처음 해보는 ‘일’ 이라서, 일을 경험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도전으로 뒀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부부가 운영하는 체인점이었는데 배달도 거의 직접 하셨다. 패스트푸드라 그런지, 배달 소리가 쉴새없이 들려왔고 나는 일의 템포에 나의 온 신경을 맞추어야 했다. 일에 집중을 하니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는 나를 발견했다. 일을 바쁘게 하면 생각을 잊게 된다. 그리고 멘탈도 나갔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는 환경에서, 손이 그리 빠르지 않았던 나는 실수가 잦았다. 피자를 깔끔히 자르지 못했고, 소스를 빼먹을 때가 있었고, 메뉴 하나를 빼먹어 배달을 다시 갈 때도 있었다. 매우 빠르시고 완벽을 요하는 사장님 아래 나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노트에 메뉴를 적어가며 일을 어떻게든 습득하려 했던 나는, 2개월 차,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장님 두분이 배달을 가셔서 나는 부엌에 혼자 있었고 피자 만들기를 배운지 하루가 지났다. 배달 주문이 수없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손이 얼어 버렸다. 그리고 그라탕을 빼먹고 배달이 갔고, 사장님이 다시 배달을 갔다 오셨다. 사장님은 화가 나셔서 일하는데 감정을 표출하셨고 피자링을 막 던지셨다. 쇳소리가 찢어지게 났고 나의 마음도 동시에 찢어졌다. 결국 자존감이 끝도 없이 하락하며 일을 그만둔다고 말씀드렸다.


다시 학교로 눈을 돌렸다.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고, 큰 재무 목표가 딱히 없었던 나는 돈에 욕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알바라는 것에 오기가 생겼다. 장애근로, 대필 알바였다. 시각적이나 청각적으로 장애가 있는 학생에게 이동지원을 하거나 수업 대필 자료를 만드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강의실로 바래다 드렸고 교양 수업을 들으며 대필 자료를 만들어 드렸다. 속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어드린 것 같아 보람찬 일이었다. 한달에 5~10만원 정도 벌었는데, 매주 작성해야 하는 것이 많고 보람은 있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경험해보는 것으로 끝났다. 그래도 내가 일에 많은 ‘기여도’를 차지한 것 같아 보람이 있었다. 과에서 하는 놀이 수업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6개의 놀이 수업 아이디어를 직접 구상해서, 아이 집에 방문해서 놀이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수업 아이디어를 짜고 아이와 놀이를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내 수업으로 아이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기뻤고 통잔 잔고에 돈이 들어왔을 때, 뿌듯했다.


대학생 기자단도 처음 해봤다. 직접 지역 신문에 실리는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대학생 4명이 한 팀이 되어 기사를 썼는데, 자료 조사를 직접 하고 인터뷰도 하면서 한 내용의 기사를 써가는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신문을 통해 시민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패스트푸드 일에 또 오기가 생긴 나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알바를 시작했다. 다행이 햄버거를 만드는 것은 꽤 수월하고 재밌었다. 하지만 역시 배달이 들어올 때 잔뜩 긴장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 였다. 일이 어느정도 익어 7개월 정도 일하고 그만뒀다. 육체노동의 힘듦을 알았다. 하지만 단순 반복인 이 일에 큰 의미와 기여를 느끼지 못했다.


23살 4학년 1학기, 번아웃이 오고 잠시 쉬었다. 휴학도 했다. 올해 복학할까 하다가, 한학기 더 휴학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취를 시작했다. 학교 주변 프랜차이즈 카페 알바를 시작했는데, 세심함과 빠른 손이 요구되는 직종이었다. 레시피를 보고 그대로 굳어버린 나는 3일 만에 카페 알바를 그만두고 말았다.


자취방에 주저앉아,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는 왜 알바만 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오래 버티지를 못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렇게 알바에 집착하는 걸까. 알바를 하는 이유가 뭘까? 어찌됐건 독립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자취를 시작했다. 완전한 독립은 경제적인 독립일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은 궁극적으로는 취업을 향해 달려나가지만, 그 과정에는 여러가지 작은 일을 통해 돈을 버는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아르바이트 또한 일이다. 단순히 용돈벌이, 시간 떼우기 일이 아니다. 나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고 무언가를, 일을 배워나가는 곳이다. 알바 자리가 제한적이고, 스케줄도 제각각이기에 처음부터 맞는 자리를 찾기는 힘들겠지만 작은 알바 자리라도 나와 맞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수가지의 카페 메뉴 레시피를 노트에 써내려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음료를 좋아하고, 음료의 맛에 관심이 있고, 음료 만들기를 즐기는 사람이 하면 카페 일에 보람을 느끼고, 이 일에 ‘기여’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음료를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즐겁지 않았다. 손으로 척척 만들기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간 ‘알바생’이라는 이미지에, 프랜차이즈 마크가 적힌 알바복, 모자에 환상을 가졌던 것 같다. 이제 그런 환상에 미련은 없다. 경험을 해봤으니까. 이제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며 ‘자연스러운’ 나의 일을 찾아 나가야 할 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잘 하게 되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를 해 가는 분야. 힘들게 시간을 써가며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일은 나의 본질과 잘 맞지 않는다. 물론 일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공부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론을 공부하지 않아도 내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적성, 천직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이 흐른 지금, 오랜만에 ‘공부’를 해봤다. 노트에 레시피를 써가며 레시피 절차를 하나하나 이해하려 했다. 갑자기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생각이 났다. 책상 위에 쌓인 교과서, 문제집, 이론, 공식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고등학생 때는 다양한 과목의 이론들을 ‘공부’해야 했다. 머릿속으로 공식들을 이해하려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성인 이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분야를 정하고 공부할 자유가 주어진다. 성인 이후부터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직접 일의 본질을 체득해 나간다. 몸으로 일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것을 예행하는 단계가 고등학생의 공부 같다. 몸으로 세상의 일을 공부하며, 나에게 자연스럽게 맞는 일을 찾고 나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나의 정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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