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대학에 갔다. 난 공장에 가고.

그것이 인생.

by 캐나다 부자엄마

혜영은 원하던 대학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대학교였다.


집에서도 가깝고 내가 꼭 배우고 싶던 거였어. 사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도 붙었다고 연락이 왔었거든. 사람들이 다 알만한 데거든 아마 초등학교 애들도 아는델껄? 근데 거기 과는 나랑은 1도 상관없는 곳이라서 그냥. 대학이름 때문에 학교를 가긴 싫더라.


합격통지서를 받았다며 혜영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잘됐다. 나는 너 하버드 대학 가는 줄 알았잖아. 너 공부 잘하니까. 그러면 너한테는 잘된 일 이긴 한데 나한테는 또 그게 잘된 건 아니니까. 나는 우리가 고등학교 졸업해도 자주 보고 싶거든. 진짜 잘됐다. 언제 학교 가는 거야?


3월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3월 2일이었나?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 아직 학교 가려면 몇 달 남았으니까 우리 놀 시간 많아. 머리도 하고 염색도 하고 싶어. 내가 전에 보여준 스타일 알지? 그렇게 약간 핑크색으로. 그럼 너무 튈래나? 그래도 지금까지 못해본 거 한번 해 보고 싶어. 애들이 그러는데 성남에 싼 데가 있데. 잘한다고 하더라. 나랑 같이 갈 거지?


핸드폰으로 흘러나오는 혜영의 목소리에 신이 묻어났다.


그래. 그러자. 같이 가면 좋지.


사실. 혜영아. 나 공장일을 하나 더 시작해서 바쁠 것 같은데. 자주 못 만나지 싶어. 사장님이 3월까지 중국공장에 납품해야 되는 게 있으시다고 야근하면 내가 받는 돈의 1.5배를 더 주신다고 했거든. 아. 내가 하는 일이 뭐냐면 유리에다가 유리가루를 입히는 건데 진짜 신기하다 막 총같이 생긴 걸로 쏘는 거야. 엄청 쎄.


근데 그거 할 때는 마스크도 끼고 물안경 같은 것도 쓰는 건데 멀리서 보면 나 꼭 과학자 같아. 아..


혜영과 전화를 끊고 혼잣말을 했다. 공장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야근을 하면 돈을 얼마 받는지 하긴 혜영은 그런 거엔 관심이 없겠지. 이제 우리는 다른 길을 가니까. 우리에겐 공통의 관심사 같은 것이 있긴 할까. 이제 우리는 같은 반 고등학생이 아니니까. 혜영은 그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거고 나도 내 삶을 사는 거니까. 사이가 멀어지고 연락이 뜸해져도 서운해하지 말자. 원래 인생이 그렇잖아. 그냥 원래부터 혼자였던 인생에 혜영이 같은 애를 만나서 운이 좋았던 거야. 재미있게 놀았고 마음도 많이 터 놓았잖아. 그러면 된 거야.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영원한 건 없잖아. 영원한게 없다는 게 또 위로가 되기도 해. 그러니까 너무 맘쓰지 말자.


나는 혜영과 전화를 끊고 방 한구석에 앉아 날 다독였다. 혼자가 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 것.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혜영에게 보여줄 것.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될 것. 오랜만에 일기장을 폈다.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길. 살다가 혼자라고 생각될 때 그래서 또 혼자 새벽까지 울다가 일기장을 펼쳤을 때 지금 내가 쓴 글이 위안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왠지 서늘한 기분이 들어 자다가 깼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보니 창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창문 열고 잤나 봐. 아직 2월도 안됐는데 창문을 열고 잠이 들었네. 아. 맞네 어제 혜영이랑 전화하다가 마음이 심란했지. 그래서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열어놨었잖아. 그걸 닫는 걸 잊었네.


몇 시쯤 되었을까? 차갑게 느껴지던 도시의 푸른빛이 좋아 보였다. 창틀에 팔을 괴고 한참을 내다보았다. 깜빡거리는 신호등. 노란색 택시. 택시는 부지런하네. 텅빈 도로를 달리네. 많이 벌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중일까? 아님 일을 시작하는 중일까?


길 건너에선 구르마에 폐지를 줍는 할머니도 보였다. 허리가 새우처럼 굽은 할머니. 언제부터 등이 저렇게 굽었을까? 교과서 같은 것도 고물상에 가져가면 돈이 될까? 다음번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서 저 할머니에게 갔다 드려야지. 그래.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맞아. 다들 잠들어 있는 새벽에도 돈을 벌잖아. 저렇게 열심히 다들 자기 자리에서.


모두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정말 엄마말처럼 돈이 썩어 문드러지게 많았으면 좋겠다. 택시기사도 폐지 줍는 할머니도. 정말 모두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럼 세상에는 돈때매 일어나는 문제같은 건 없을것 같아. 예를 들어 돈때매 동생을 데리고 집나간 엄마라던지 그런 문제들 말이야.


춥다.


창문을 탁 소리가 나게 닫았다. 나쁜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전에. 다시 자야지. 지금 자면 두시간은 더 잘수 있겠다. 이불안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다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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