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공장에 걔가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 흰자위만 보석같이 영롱한 흰색이던 애. 웃을 때 보이던 이빨 만 하얀 애. 걔는 늘 내 맞은편에 있었다. 나는 그 반대편에 있었고. 우리는 숨만 쉬고 종이 박스를 접었다. 여사님들이나 공장 삼촌들이 더러운 농담을 하고 갈매기들처럼 끼룩끼룩 재밌다고 웃어젖힐 때도 우리 둘은 쉬지 않고 박스만 접었다.
박스만 접으면 되는 거였다. 마치 우리는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듯 말이다.
"어이. 누렁이. 한국 할아버지 하나 꼬셔서 여기서 눌러살라니까. 한국이 얼마나 좋아. 내가 전에 필리핀을 간 적이 있거든. 거리에 쓰레기며 아이고 말도 못 해. 애들은 신발도 없이 다니고 거리에 막 똥을 싼다니까."
또 저 소리. 개 같은 소리. 공장장이 입을 열 때마다 정말 부끄럽다. 내가 슬쩍 걔 눈치를 봤다. 씩 웃는다. 웃어.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아니 왜 웃어. 미친 새끼야. 닥쳐 이렇게 말해야지. 아. 필리핀에서 왔다고 했나. 아님 방글라데시었나. 쉬는 시간에 딱 한번 걔랑 말한 적이 있었다. 한국말이 어눌한 탓에 난 걔 말을 잘 못 알아 들었고 우린 그냥 웃었다. 참 걔 이름은 엠마라고 했다.
"언니, 언니도 그냥 돈 많은 남자하나 물어서 시집이나 가. 공부는 무슨 공부야. 돈이 최고야. 돈이 다라고 내가 살아보니까 그래. 화장도 하고 빨간색 루즈도 바르고 여자가 좀 꾸며야지. 머리는 이게 뭐여. 언니야 좀 꾸미고 다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공장장님 여자예요? 왜 자꾸 언니라고 불러요? 저보다 어려요? 왜 딸 같은 애들한테 찝쩍거려요. 미친 새끼야. 발정 난 똥깨처럼 맨날 여기저기 찌르고 야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먹었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곱게 늙자고. 제발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정말. 아.
"저 언니 아닌데요." 내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 바보 같은 년. "낄낄" 공장장이 수채구멍 물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썩을 놈. 귀신은 뭐 하나 저런 놈 안 잡아가고.
그런데 걔가 안 왔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왜 안 왔을까. 어디가 아픈 걸까. 걱정이 된다. 그래도 여기 공장에서 친구라곤 걔하나뿐인데. 왜 안 왔을까?
"걔 있잖아. 걔."
"누구."
"여기 있던 그 중국 앤가."
"아. 걔 외국애?"
"응. 걔가 어젯밤에 퇴근하고 길 가다가 고등학교 애들한테 맞았다야. 여기가 얼마나 깜깜혀. 가로등도 없고. 퇴근하고 빈 공장들도 많잖아. 거기 데려가서 팼나 보더라고."
"아이고야. 어떻게 알았디야."
"몰러. 경찰하나가 걔 주머니에 있는 우리 공장 명함 보고 연락했나 보더라고. 공장장이 병원 갔다 왔는데 얼마나 팼는지 얼굴이 푸르뎅뎅하디야."
"네? 왜요? 왜 때렸데요? 많이 다쳤데요? 병원은요? 어디 병원이래요? 얼마나 다쳤네요." 순간이었다. 한 번도 공장에서 이렇게 말을 많이 한 적이 없었다. 화가 났다. 아니. 왜. 가만히 있는 애를 데려다가 왜 때리냐고. 왜.
"몰러. 공장장한테 물어봐. 난 그냥 들은 거야."
공장장한테 병원 주소를 받아 들고 엠마가 있는 병원을 찾았다. 밥은 먹었을까 싶어. 근처 죽집에서 야채죽이랑 음료수 몇 병을 샀다.
6인실 병실. 그곳에만 커튼이 둥그렇게 쳐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텔레비전도 보고 가족도 온 것 같은데. 엠마가 있는 곳은 섬처럼. 바다 한가운데 버려진 플라스틱 물병처럼 그렇게 그렇게.
"엠마. 엠마야. 나야." 겨우 목소리를 낸다. "엠마야. 나야. 커튼 좀 열어줘." 얇은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무거운 한숨이 오간다.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서려는 찰나 거뭇한 손가락이 커튼을 잡는다.
"아. 엠마 얼마나 놀랐어. 얼마나 아팠어. 엠마야." 맞아 시퍼렇게 불어 터진 눈두덩이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강 같은 아픔이 흐르고 흘러 바다가 된다. 그 바다에 나도 있다. 아빠한테 맞던 수많은 날들. 죽으려고 내가 나를 죽이려고 했던 깜깜한 밤들이 모두 모여 바다가 되었다. 그 바다에 엠마도 있다.
"아파. 때렸어. 그냥. 막." 엠마가 말을 하다 운다. 서럽게 엄마 잃은 나처럼. 엄마가 날 버리고 도망가던 여섯 살의 나처럼 그렇게 서럽게 한여름 매미처럼. 그렇게 서럽게 시끄럽게.
"괜찮아. 괜찮아. 힘들면 말하지 마. 괜찮아. 밥 먹었어? 밥 먹어야지. 이럴 때일수록 맛있는 거 먹어야 돼. 미안해. 내가 많이는 못 사 왔어. 이거 죽인데 따뜻할 때 먹어. 따뜻한 게 속에 들어가면 괜찮아. 알았지? 울지 말고. 미안해. 내가 미안해."
툭. 사탕만 한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한 개가 금방 여러 개가 된다. 후드득. 내 손등으로 떨어진다. 소나기 같아. 괜찮아. 엠마야. 소나기는 금방 그치니까.
엠마가 죽을 먹는다.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맛있게 먹는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 죽을 먹는다. 살아야지. 이럴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돼. 끈질기게 꼭 살아야 돼. 그렇게 보였다.
"다 먹었어?" 내가 또 사 올게. 내가 매일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이따 저녁엔 하나가 오겠지. 그 생각만 해. 알았지? 잘 먹고 잘 자고 그럼 돼. 알았지? 공장사람들도 다 걱정하니까. 응? 알았지? 울지 말고."
백팩을 메고 일어나려다. 가방에 달린 곰돌이 열쇠고리를 뗀다. "이거 내 부적이거든. 부적이 뭐냐면 지켜주는 거. 무섭고 나쁜 것들로부터 널 지켜주는 거야. 내가 아빠한테 뚜드려 맞고 막 죽으려고 했었거든. 그때 얘가 날 지켜줬어. 행운의 곰돌이야. 너 줄게. 아니야 괜찮아. 너 가져도 돼. 응 정말로. 너 가져."
한사코 곰돌이를 밀어내는 엠마에게 다시 곰돌이를 쥐어준다. 혹시라도 부서질까 그 여린 몸을 휴지로 감싸 안듯 조심스럽게 안아준다. 서로의 어깨가 들썩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괜찮아. 우린 서로에게 주문을 건다. 괜찮을 거라고. 우리가 있으니까 튼튼한 우리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