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만난 필리핀 친구. 엠마

by 캐나다 부자엄마

다시 엠마를 보러 가는 길이다. 매일 온다고 말은 했지만 어떤 날은 스타벅스 마감이 너무 늦게 끝나고 또 어떤 날은 식당 설거지 알바가 늦게 끝났다. 그 사건이 있고 일주일이 지났다. 엠마는 여전히 병원에 있다. 운이 나빴다. 혹은 운이 좋았다.


엠마가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이유도 없이 맞아 병원에 입원했던 날. 난 열에 받혀 글을 썼다. 아니 화를 토해냈다. 이게 말이 되냐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한국말을 못 한다고 사람을 이렇게 패도 되냐고. 이게 대한민국 맞냐고 K 열풍이네 뭐네 정말 그런 게 맞냐고. 30만 이랬나? 암튼 무지무지 유명하다는 인플루언서 하나가 내 글을 퍼 날랐다. 조회수는 폭발했고 여기저기서 엠마를 도와준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주 활동가는 엠마를 보러 병원에도 왔다 갔다고 했다.


엠마를 만나러 가면서도 혹시라도 내가 괜한 짓을 한건 아닌지. 엠마가 불편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다.


일주일 만에 시간이 났다. 스타벅스 일을 하루 뺐다. 새로 들어온 직원이 나 대신 하루를 일해줄 수 있다고 했다. 하루쯤이야 일 안 해도 괜찮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니까. 돈 같은 건 다시 벌면 되는데 망가진 마음 같은 건 다시 단단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내가 옆에 있어줘야지. 나도 그리웠잖아. 누군가의 손길이.


엠마를 보러 간단 말에 공장 이모들이 내 손에 이것저것 들려줬다. 빨간 두건을 두르고 있는 이모 이름은 은희라고 했다. 은희이모는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된다고 소불고기를 건네줬다. 병원은 추울 거라면서 양말이며 장갑. 어디 시골장터에서 사 온 옷들도 받아왔다.


레드페이스? ㅎㅎㅎ뭐야. 노스페이스 짜가인가? 은희이모가 건넨 레드페이스 티셔츠를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명 메이커라고 했는데 이모. 평소에는 몰랐는데 공장 여사님들. 아 이제는 이모라고 부른다. 이모들은 정 많은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영숙이 이모는 같이 병문안을 온다는 걸 떼놓고 온다고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평소에 나처럼 공장에서 말이 없던 숙이 이모는 공장에서 나온 감자조림을 엠마가 맛있게 먹었다는 걸 기억한다면서 매일 먹어도 한 달은 더 먹을듯한 감자조림 한통을 건네주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등에 맨 가방이며 손에 든 장바구니가 무겁다. 근데 기분은 좋다. 엠마를 사랑하는 마음. 엠마가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은 가볍지 않으니까. 가방처럼 무거운 게 맞으니까. 엠마는 며칠이면 퇴원해도 될 만큼 많이 회복했다고 했다.


"엠마야."


사람들이 엠마를 위해 돈을 많이 내줬다고 했는데 병원 측에서도 엠마 사정을 알았다고 했다. 엠마는 6인 병실에서 혼자 쓰는 병실에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기분 좋은 꽃냄새가 가득했다. 엠마는 꽃 속에 파묻혀있었다.


"어? 엠마 어디 있어? 다 꽃이라 못 찾겠는데. 여기가 아닌가?"


장난기가 발동했다. 엠마가 베시시 웃는다.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곱다. 엠마야.


"고마워. 하나. 고맙습니다." 엠마가 말을 한다. 엠마 눈에서 물방울 하나가 반짝거리더니 또르르 떨어진다.


"엠마야. 울지 마. 다 엠마 편이야. 사람들이 엠마 도와준데. 미안해 내가 엠마한테 물어보고 글을 올렸어야 되는데 화가 나서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럴게. 미안."


"괜찮아. 괜찮아요." 엠마가 나를 안아준다. 나도 엠마에게 안긴다.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원래 인생이 그렇더라고 나쁜 일이 오면 꼭 다음엔 좋은 일이 왔다고. 그러니까 더 좋은 일이 올 거라고.


"엠마. 이거 공장이모들이 전해주래. 이거는 은희이모가 준거. 아. 은희이모가 누구냐면 머리에 두건 쓴 이모 있잖아. 맨날 꽃무늬 바지 입고 목소리 제일 큰 이모 응응 그 이모가 준거. 그리고 이거는 영숙이 이모가 주고 이거는 상옥이 이모. 엄청 많지? 참 밥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 나 너랑 밥 먹으려고 일부러 안 먹고 왔어. 내가 찌개 끓여 왔는데 된장국 시금치 엄청 많이 넣었어. 시금치가 몸을 강하게 해 준데. 너 뽀빠이 알아? 그 알통 막 울끈불끈 한 아저씨. 응 그 아저씨가 시금치 많이 먹어서 그런 거잖아. 맞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나는 말이 많구나. 보온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생각했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구나 농담도 잘하고 명랑한 사람이구나. 그게 참 좋네. 엠마는 그랬다. 나도 모르는 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나도 날 몰랐는데 그걸 알게 해주는 사람. 그게 엠마였다.


"맛있어. 맛있어 고마워. 한국말 배워. 잘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나 도와준 싸람들한테. 학교도 가고 꿈이 있어. 공짱에서 일할 땐 없어. 꿈. 근데 있어 이젠."


"우와 엠마. 한국말 잘한다. 그동안 공부한 거야? 여기서?"

"너한테 해주려고 외웠어. 고마워서."


엠마가 그동안 한글을 연습한 연습장을 내밀었다. 빼곡하게 한글이 적혀있다. 어떤 페이지는 얼마나 힘을주고 썼는지 구멍이 나있었다. 한국말이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때리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얼마나 그 말들이 하고 싶었을까. 엠마는 몇번이고 하고 싶은 한국말들을 꾹꾹 힘주어 공책에 적었다. 희망같은 걸 꾹꾹 눌러 담아서.

keyword
월, 목, 일 연재
이전 09화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피노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