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선.
아내가 집을 나갔다. 술을 먹고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아니 그렇게 까지 때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화가 났다. 화라는 게 그렇다. 한번 화에 불이 붙으면 다 타버린다. 사랑했던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잘 살려고 했던 나까지 그렇게 다 태워버린다. 남는 건. 까맣게 타버린 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술을 먹고 아직 남아있는 힘을 과시하는 것 어린애들 앞에서 그리고 날 믿고 결혼했던 여자 앞에서.
직장에서 잘렸다. 잘하려고 했는데 시발. 나한테는 기회를 안 준다. 아니 지가 부장이면 지 꼴리는 대로 해도 되냔 말이다. 다들 날 싫어하는 것 같아. 지난번 회식 때 술 마시고 실수를 한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집에는 들어간 것 같은데 집 식탁을 뒤집었던 기억은 난다. 콩나물국이 엎어졌던 기억들. 나 먹으라고 끓여놨던 거겠지. 왜 그랬을까? 나도 날 모르겠다. 술만 마시면 화가 그렇게 난다. 아내가 울었던 기억도 나. 이렇게는 못 산다고 이혼하자고 도장찍자고 악을 지르고 울었던 날들. 쓰레기 같던 더러운 기억들.
내가 아내를 때리던 날. 정말 여자 하나가 복날 개처럼 뚜드려 맞던 날. 때리는 것도 어찌나 힘든지 때리다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글쎄 이 요망한 여편네가 아직 돌도 안된 애만 데리고 도망을 갔네. 일어났는데 딸년만 남았어. 우리 늙은 어매랑. 시발 것 화가 나는 거야.
회사에도 잘리고 여편네는 도망가고 이건 뭐 그냥 죽으라는 거 아냐. 기회를 줘야지. 나 같은 사람도 살 수 있는 기회를. 원래 하나를 때리려던 건 아니었거든. 걔가 그때 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 그랬는데 지 에미랑 똑같이 생긴 애거든. 그놈의 술 때문에 원래 진짜 때리려던 건 아니었어.
근데 내가 술만 마시면 그놈의 소주만 마시면 눈이 까무락 돌아가잖아. 그래서 한대 쳤거든. 얼굴이었나 머리통이었나. 근데 걔가 나동그라지더라고. 아직 국민학교도 안 들어간 게 아파 죽겠다고 짹짹거리면서 나가떨어지는 거야. 아니 내가 그렇게 세게 쳤냐고 그게 기분 나빠서 더 때렸지. 그래. 때렸다기보다 그냥 팬 거 같아. 근데 이 쪼끄만 게 안 맞으려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면서 몸을 동그랗게 마는 거야. 쥐 며느리처럼 살아보려고 아둥거리는게 꼭 나 같아서 더 팼다니까. 기분 더러워서.
그게 꼭 어제일 같은데 벌써 십 년도 넘었어. 하나 고년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데. 내 기억은 여편네가 젖먹이 데리고 도망간 그때 기억에 멈춰있는데 하나 년은 뒤돌아보면 금세 커있더라고. 밥 한 번 차려준 기억도 없는데 잘해주고 싶었거든.
내가 아빠 없이 커서 어렸을 때 애들 낳으면 잘해줘야지. 좋은 아빠 돼 줘야지 했었는데 다 망했어. 하나 고년은 이제 나한테 인사도 안 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술 마시고 성질부리는 거 그러면 안 맞으려고 움찔이라도 하니까. 근데 이제 기력이 없어. 그래도 하나는 이제 나보다 키도 큰데 아무 대꾸 안 하고 내가 때리는 매를 다 맞아. 맘먹고 덤비면 날 이길 것도 같은데 지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한 번도 대들어 보지를 않아. 그게 날 또 미치한 다니까.
우리 엄만 다 늙어서 내가 지랄하면서 살림살이를 다 부셔도 암말도 안 해. 여든인가. 몰라 난 우리 엄마나이도 몰라. 예전에는 울고 불고 너 죽네 나 죽네 생난리를 치더니 이젠 남의 집 불구경하는 것처럼 그냥 지긋이 보고만 있어. 내일 죽어도 괜찮은 사람처럼 그렇게 넋 놓고 앉아 있다니까. 시발 것 답답해서 집을 나왔어. 서울역도 돌아다니고 지하상가에서도 자고. 운 좋은 날은 모르는 사람한테 담배도 얻어 피고 어디 뭐 무슨 단체에서 밥도 준다고 해서 밥도 얻어먹고.
잠잘 때가 젤 문젠데 여기 지하철역 안에도 자기 자리가 있나 봐. 시발. 나이 육십 넘어도 내 집하나 못 산 사람인데 거리에서도 자리를 못 잡아. 어제 박스하나 운 좋게 깔고 잠자고 있는데 누가 발로 날 툭툭차는 거야. 여기가 지 자리라고 비키라고 해서 버티고 있었거든. 시발 자리에 이름 써놨냐고 대들었지. 그놈이 날 얼마나 때리고 차던지. 내가 술에 취해서 그 매를 다 맞았다니까. 아파 죽겠네. 온몸이 다 멍이야.
맞으면서 입안도 터져가지고 비릿한 피를 쭉쭉 빨면서 잠들었어. 내 팔자가 그래. 아니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내 팔자 내가 꼬면서. 희망이 없어.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뭐. 머리카락도 덥수룩해져서 뵈는 것도 없어. 그냥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산송장같이 살아.
오늘 새벽에 지하철역 복도에 누워있다 추워서 잠이 깼거든. 몇 신지도 몰라. 시계도 없으니까. 엎드려서 눈만 멀뚱뜨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신은 신발이 낯이 익어. 보니까 하나야. 그년이 날 싫어하는지 알았는데 내가 준 운동화를 신고 가더라. 새벽이었는데 뭘 그렇게 동동거리고 걷는지. 그 신발 밥 얻어먹으러 갔다가 준 건데 하나 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하나 달라했거든. 걔가 그 운동화를 신고 가더라고. 내가 준 걸.
정신이 깜빡깜빡해. 고장 난 전구처럼. 어느 날은 밝았다가 어느 날은 꺼메지고 그래. 내가 멀리멀리 숨어야지. 하나가 행복할 것 같아. 연락 안 하고 걔 앞에서 사라져야 내 딸년이 잘 될 것 같아. 걔는 그래도 지 에미처럼 날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잖아. 나는 망했지만 하나라도 걔라도 잘 살아야지. 만약 나한테 운 같은 게 있다면 손톱으로 박박 긁어서 내 딸년한테 줄 거야. 나는 이렇게 살아도 돼. 아빤데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진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걔 앞에는 나타나지 않을 거야. 그래도 내 핏줄이니까 나랑 같은 세포하나 걔 몸에 있을 테니까 알지 않을까 내 맘을. 아무것도 못해주는 아빠 맘을. 미안해. 딸.
멀어져 가는 하나 뒷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빠로서 하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멀리멀리 사라져 주는 것. 죽어서도 부담 주지 않게 아무도 날 알아볼 수 없게 타다 남은 재처럼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것. 하나를 위해 나를 위해. 더 이상 구차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아빠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