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손녀딸이 안쓰러워서.

by 캐나다 부자엄마

할머니의 시선.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봐. 내가 올해 몇 살인가. 나이를 안 세고 살아. 그래서 몰러. 내가 빨리 죽어야 되는데. 아이고 다 꼬부랑 늙어가지고 흉한 꼴을 다 뵈는가. 우리 아들. 내가 우리 아들 낳고 정말 기뻤걸랑. 우리 영감이 고추 달린 애 나았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없는 살림에 마을 잔치를 한다고 난리를 쳤지. 그리고 아들이 다섯 살인가 그때 영감이 아파서 시름시름 앓다가 병으로 죽었어. 어디가 아픈지도 몰러. 병원 가봐야 돈만 드니까. 또 우리 영감이 고집이 좀쎄. 그냥 그렇게 죽었지. 뭐 의원 한번 못 만나 보고. 내가 그때 서른이었나. 그랬을 거야. 내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애들 셋을 혼자 키웠지. 사람들이 남편 잡아먹는 년이라고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댔는지. 우리 집이 부정 탄다고 재수 없다고 쫓겨났다니까. 소문이 독버섯처럼 쫘악 퍼져가지고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이 퍼져서 젖먹이 막둥이 둘러업고 아들내미는 지 동생 손잡고 밤에 동네를 도망 냐온 겨.


갈 데가 어딨는가. 그냥 아무 데나 가서 빌어먹고 헌 옷도 주워다가 애들도 입히고 나도 입고. 시장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래기 있지. 그거 주워다가 된장국을 한 달 내내 끓여 먹고 키운 애들 인디. 배고프니까 뭐 쪽팔리고 그런 것도 없어. 뭐라도 먹어야 될 거 아녀 뭐. 자존심 같은 게 밥 먹여 준데? 그런 말도 있잖아.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밥을 못 먹으면 산 사람도 거뭇거뭇해. 살아있어도 밥을 못 먹으면 죽은 사람처럼 눈알 같은 것도 푹 꺼진다고.


딸년들은 어디서 사는지도 몰러. 내가 구박 좀 하고 돈 얘기 좀 했더니 연락을 끊은 게 벌써 몇십 년도 됐지? 아마. 몰러. 나는 시간 가는 걸 잘 안 세어봐서. 그걸 뭐 하러 세고 앉아있어. 신경 쓸게 얼마나 많은데 그냥 놓고 사는 거야. 시간도 나도. 아들새끼도 다 놓고 살지. 그래야 또 살만해.


우리가 비닐하우스에서도 살고 빈집에서도 살다가 뭐 정부에서 누가 와서 도와준다 하데. 그래서 뭐 못 사는 사람들만 모아다가 사는 아파트라 하데. 거기서 살아. 누구는 공부를 시키고 뭐 어짼다는디 내가 까막눈이여. 글을 몰라. 영감이라도 살아있었으면 애들이 잘 살았을까 싶어. 한 많은 인생이여. 수제비 한 그릇 먹는 것처럼 뚝딱이여. 사는 게 그려.


쟤. 큰애 결혼할 때 내가 반대했거든. 그냥 엄마맘에 그렇잖아. 내가 혼자 쟤를 키웠는데 어쩔 때는 남편 같고 어쩔 때는 애인 같고 그랬다니까. 의지했지. 영감이 없으니까. 근데 저놈이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데려온 거야. 저 솜씨 끼는 내 옆에서 평생 있을 줄 알았거든. 나한테 용돈이나 몇만 원씩 쥐어 주면서. 썩을 놈.


사랑이 뭐 밥맥여주나. 지랄이지. 살아봐 사랑이 어딨어. 돈이 최고지.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 아니여. 나도 돈만 있었으면 이렇게 쭈글쭈글한 뒷방 할머니처럼 안 살지. 뭐 요즘엔 주름살도 펴주는 수술이 있다 하대 그런 거 하고 나도 손톱에 시 빨간 매니큐어 칠해서 시집가지. 돈 많은 할아버지 만나서.


몰러. 저놈이 술만 마시면 지 부인을 그렇게 패데. 눈깔이 막 돌아가지고 북어채 마냥 사람을 그렇게 뚜드려 패대. 나도 맞을까 봐 무서워서 하지 말라고 말만 몇 마디하고 말았지. 영감도 살아서 그랬거든. 아주 지랄퉁이 그냥 뭐만 맘에 안 들면 그렇게 지랄 난리를 피웠는데 저놈이 그 짓거리를 하고 있데.


쟤가 지 아빠 살아있을 때 어렸는데 대여섯 살이었는데 날 팼는 걸 봤는지 그걸 자기 맘에 담아두고 살았는지 똑같여. 하는 짓이 지 아빠랑. 그래서 어떨 때는 겁나. 죽은 영감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니까.


다 돈 때문에 그런겨. 돈이 없어가지고. 근데 그래도 그렇지 며느리년이 젖먹이를 데리고 도망갔다니까. 지 큰딸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손녀가 지 어미를 꼭 빼다 박았어. 그래서 저 놈이 손녀를 그렇게 패는 거 같여. 지 부인 생각나서 술만 마시면 그렇게 애를 패.


저 손녀라는 년도 고집이 얼마나 센지 미안하단 말도 안 하고 황소처럼 뚝하니 서서 저 매를 다 맞고 앉아 있다니까. 이제는 울지도 않아. 그냥 맞고 빨리 끝내 자라는 듯이 눈만 땡그랗게 뜨고 앉아 있어. 속 터져. 집안꼬락지가 이랴.


나도 손녀랑은 데면데면하제. 그래도 저게 살아보겠다고 어디 일을 나가는지 다람쥐처럼 새벽에 뽀르르 나갔다가 뭐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러. 쥐새끼처럼 살금 거리고 들어오는지 나는 쟤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자니까. 나갔다 오면 식탁에 한 번씩 빵 같은 걸 올려놓는데 뭐 할머니 드세요. 이런 말도 안 해 그냥 지 성질머리처럼 툭하니 올려놓고 있는가. 맛은 있데 서양빵인지 뭐 케이키 뭐라고 하던데 크림이 부드럽도만 아껴 먹을라고 밥솥에 넣어놨는데 개죽처럼 다 풀어지더라고. 손녀가 그랴. 할머니 이거는 밥통에 넣어놓면 안 된다고. 그냥 먹으래 자기가 또 가져온다고 아끼지 말고 먹으라고.


한 번은 쟤 방문이 쬐깐 열려있더라고. 보니까 애가 시래기처럼 축 늘어져갖고 누워있는가 난 또 죽은 지 알고 심장이 썰렁 혀. 가서 보니까 얼마나 피곤했는지 쓰러져서 잠이 득녀. 안쓰럽지 그래도 거의 이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정이 들었지. 이불이라도 덮어줄라고 가까이서 보니까 지 팔에 난도질을 해놓은가요. 나는 고양이가 할퀴었는지 알았다니까. 어찌나 지랄발광을 해놨는지.


지도 괴로웠을 거야. 엄마는 도망갔지 아빠란 놈은 술병 나서 맨날 패지. 할머니라고 하나 있는 건 욕지거리만 하지. 쟤도 기댈 데가 없었던 겨. 나는 내 아픔만 보느라 내 껏만 신경 쓰느라 쟤는 못 봤지. 그게 미안하더라고. 내가 늙어서 철이 들었는지. 쟤 아픈 맘이 이제야 보인다니까.


집에 뭐 연고도 없고 약도 없어가지고 그냥 이불만 덮어줬지. 잠이라도 따뜻하게 자라고. 따뜻하게 자야지 그래야 몸도 마음도 따뜻해질 거 아녀.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항상 속이 차. 한 여름에도 속이 서늘하다니까 없어서 무시받고 눈치 받고 집에서도 인정 못 받고 어디 뭐 기댈 데도 없잖아.


내가 할미가 되어가지고 쟤를 챙겼어야 하는데 내 껏만 보이니까 내 슬픔 내 아픔 미움 같은 것만 내가 여든이 넘어도 나이만 처먹었지 어른은 아니었던 거라.


나라도 쟤를 닭알처럼 품어줬으면 저렇게 지 몸에 칼집을 안 냈을 텐데. 마음이 미어지더라고.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 쟤가 아른거려. 눈앞에 있어도 눈에 밟히네. 얼마나 괴로웠으면 어린년이 저랬을 거야. 저 어린 게 지 엄마 도망갔을 때는 삐약삐약 병아리 같이 울어졌히던게 이젠 울지도 않아. 마른미역처럼.


쟤는 어렸을 때 넋을 놓고 울어서 몸 안에 있는 물 같은 게 모조리 다 말라버렸나 봐. 감정 같은 것도 마음 같은 것도 다 말라버렸지.


쟤는 그냥 마른걸레처럼 살아. 그렇게 건조하게. 미동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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