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자퇴생도 잘먹고 잘살아요.
학교는 어디나왔어요? 직장은요?
몇가지 질문에 쭈삣거리며 답을 한다.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마트 시식처럼 겁을 집어 먹는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는 뻔한 사람이 된다. 한국에서는 그랬다. 내가 나온 대학이나 직장이 나란 사람에 대해 모든것을 말해주었다. 억울한 것도 있었다. 저기 사실은요, 제가 엄마아빠가 싸우고 그래가지고 공부를 안했걸랑요. 그래서 겨우겨우 지방대 4년제에 갔는데 적성에 안 맞아서요. 자퇴를 했어요. 라고 설명을 하기도 뭣했다.
지난 29년간 나름 한국에서 열심히 살았다. 첫 월급이 90만원이었던 유치원을 시작해서 130만원까지 주는 영어유치원에서 일을 했으니까.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박스 공장이니 계란 공장에서 일도 했다.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다.
"대학을 그런데 나오면 그런데서 일하는 거야."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심지어 계란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빨간 두건을 쓴 아줌마조차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 고작 25섯이었다. 인생이 망했다고 말하기도 뭣한 너무 이른 나이.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 대신 내 앞길에 마침표를 찍었다. 안될거라고.
때로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흉이 된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것도 욕이 된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뒷담화의 대상이 된다.
아니 그냥 모든것이 흉이 된다.
흐르고 흐른다. 사연많은 인생이, 한많은 인생이 굽이굽이 물결따라 흐른다. 흐르고 흐르다가 캐나다까지 흘러왔다.
망하는 건 없다. 늦을 뿐이고 헤맬뿐이다. 내가 모든걸 놓지만 않으면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게 인생이다. 인생을 100%로 다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망하는 인생은 없다.
망할듯 망하지 않는게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