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필요에 의한 열정
한편 토요학교의 교사는 그녀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시내 학원에 보내자고 했다. 지금 성적으로는 대학을 꿈도 꿀 수 없고, 공부의 기초가 없어서 국. 영. 수 기본 세우는 데만 2년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또한 “당신 딸을 이 시골의 대부분 여자애들처럼 농사짓다가 팔려가는 운명으로 만들 것이냐?” 거의 협박을 하다시피 반강제적으로 학원을 등록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학원을 등록하고 매월 학원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 였다. 학원비 마련을 위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농사일 밖에 없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집에서 다른 자녀들을 돌봐야 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농사 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간혹 특별한 돈이 필요할 때만 하루 일당을 받고 밭에 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서 결혼을 한 40세 이상의 남자들 대부분은 밭에 나가 일하지 않고 마을 회관에 모여 차를 마시며 노름을 하거나 수다를 떨며 허송세월을 보낸다. 농사일은 여성들이나 자녀들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원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그녀의 아버지와 봉사자들은 의논한 후 학원을 찾아갔다. 학원 원장에게 그녀의 집안 사정에 대해 설명을 하였고 학원 측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학원 측에서 학원비의 1/3을, 봉사자들이 1/3, 그녀의 아버지가 1/3을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정말 잘 되었다. 학원 측의 배려로 모두 기뻐했고, 학원 측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봉사자들은 모두 십시일반으로 매월 그녀의 학원비를 모았으며 그녀의 아버지도 고정된 일자리를 알아보고 밭에 나가 일했다. 학원에서의 공부와는 별개로 수학의 기초를 위해 개인 과외도 시켰다. 수학 개인 과외비와 매일 시내를 다녀가는 교통비와 용돈은 한국인 봉사자 몇 사람이 비용을 감당하였고 주말에는 한 한국인 봉사자의 집에서 1박 2일 머물며 개인 과외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딜란’은 몇 년이 지난 후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 저의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특히 우리 반 한국 선생님을 보는 것이 제일 싫었어요. 매주 토요일은 저에게 끔찍한 시간이었어요. 왜냐하면 매주 선생님은 저에게 생활습관, 공부하는 방식, 규율에 대해 지속적으로 가르쳤고, 공부 안 하면 밭에 나가 노예처럼 일하다가 나이 많은 사람에게 팔려갈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어요. 그래서 저는 매주 금요일만 되면 이렇게 기도했죠 ‘신이시여 나를 귀찮게 하고 협박하는 저 한국 사람들 내일 못 오게 해 주세요. 오다가 교통사고 당하게 해 주세요’ 물론 그때는 철이 없었죠. 그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 그리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겠어요. 더욱이 선생님이 엄청 몰아붙였거든요. 운명을 바꾸는 길은 공부하는 길 밖에 없다고 했어요. 뿐만 아니라 매주 두세 번씩 저에게 전화해서 저의 생활을 점검하고 잔소리도 아끼지 않았죠.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런 압박이 없었으면 아마 중간에 포기했을 거예요. 선생님의 협박이 저를 악착같이 공부하게 만들었죠 ㅎㅎ 이 지긋지긋한 시골에서 탈출하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한국 선생님의 모든 말씀이 옳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