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게 받다

제14화 은혜와 노력의 결실

by 로진

봉사자들은 또 다른 마을에서 토요학교를 열기 위해 모여서 의논했다. 기존의 토요학교를 유지하며 새로운 지역에서 한 개 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특별히 무엇보다 새로운 자원 봉사자들을 모집해야 하는데 한정된 인원 안에서 교사 역할을 할 사람을 찾아내어 기본 교육을 시키고 배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이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원하는 현지인들이 많아야 하는데, 현지 청년들 가운데는 그때까지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인식, 특히 야학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도움을 받을 줄은 알았지만,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색해했고 더욱이 교육적인 차원에서 누군가를 도운다는 것에 대해 아주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자원하는 현지인들을 모아 장시간 정신교육부터 시켜야 했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여성 교육에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한국의 예를 들며 몇 번씩 열변을 토해야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몇 주가 지나지 않아 교사들이 확정되었고, 또 다른 야학에 배치하였다. 새롭게 시작된 마을은 약간 분위기가 달랐는데, 기존의 마을보다는 좀 더 정돈되어 보였고 마을 사람들의 생각 수준도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물론 그동안 워낙 낙후된 지역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웬만한 지역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대장암으로 사망한 A 씨의 부인 친정 집에서 학교가 시작되었는데, 그들의 자녀 5명, 이웃의 자녀 10여 명이 참여하였다.


한편 ‘딜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수만에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늘 선망해 왔던 초등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초등교육학과는 한국의 교대와 비슷하다. 가장 낙후된 마을에서 그것도 여자 아이가 초등교육학과에 합격한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초등교육학과는 다른 일반 학과들보다 성적이 월등히 높고 교사의 월급도 많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있어서 이 학과는 로망이었다. 사실 그녀의 현실을 보면 그 학과에 합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큰 행운이 따라주었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초등교육학과 있는 여러 대학교에 지원서를 쓰면서 한 가지 지혜도 발휘했다. 국경지역의 한 도시에 국립 대학교가 신설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그 대학교는 제대로 된 캠퍼스도, 건물도 없이 미리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었는데, 이 정보를 입수하고 그 대학교에 원서를 썼고 최종적으로 합격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쁜 일은 합격한 대학교는 강의실이 아직 완공되지 않았기에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현 주소지의 국립대학교 같은 학과에서 수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아니 그 마을에 있어서 엄청난 기적이었다. 고등학교 2년과 삼수를 거친 4년간 그녀의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지원을 통해 큰 결실이 맺혔다. 그녀의 부모와 친척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봉사자들이 함께 기뻐하였으며 그 마을의 경사가 되었다. 여자아이가 대학에 합격한 것은 그 마을에서 최초였고 특히 초등교육학과 합격은 지금도 그 마을의 전설로 남아있다.


대학시절 동안 ‘딜란’은 그 시절 여대생 누구나 대부분 누리고자 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했다. 남자 친구도 사귄 적 없고, 카페 앉아서 친구들과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대학 3학년이 되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닐 시기에 그녀는 오로지 교사의 꿈을 향해 달려야만 했다. 어쩌면 그녀의 가정 형편이 그녀로 하여금 대학생활을 그렇게 이끌어 갔을 수도 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한가하게 친구들과 놀러 다닐 수도, 남자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고시학원의 학원비 마련을 위해 그녀의 부모가 열심히 일을 해야 했고, 외국인 봉사자들도 사방팔방으로 도움의 손길을 찾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여대생의 반짝반짝 빛나고 화사한 옷 한 벌조차 없었고 예쁘게 화장 한번 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 끝에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또래의 다른 학생들보다 2년 먼저 시작한 고시 공부가 4학년 졸업과 동시에 임용 고시에 합격했고 곧바로 근무지로 발령까지 났다.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교사 생활이 이제 15년 차 어엿한 중견 간부급이 되었고, 그녀의 영향을 받은 바로 밑의 여동생이 있는데, 그 여동생도 초등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한 학교에서 교사로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