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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aNa Mar 22. 2022

저녁노을

내 그리움이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퇴근길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좋아하는 저녁노을.

붉게 물든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추억이

잔잔한 파도가 되어 가슴 깊은 곳으로 밀려 들어온다.


시골에서의 유년 시절

잠자리 잡으며 수수밭에서 한나절을 보냈고,

개구리 따라 폴짝폴짝 논두렁을 뛰놀며 저녁을 맞이했다.

산골짜기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고,

흐르는 강에서 목욕하고 방망이를 두들겨 가며 빨래하였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자갈밭에 옷가지들을 펼쳐둔 채

언니들과 물장구치며 짓궂은 장난을 하느라

강물에 신발이 휩쓸려가는 줄도 모르고 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산과 강 논두렁을 헤매고 다니다가도

서산 넘어가는 해를 보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은

맑은 내일을 약속하듯 나를 설레게 하였고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나를 반기는 가족의 신호였다.   

  

저녁노을과 함께했던 어릴 적 감정

수십 년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에게 저녁노을은 그리움과 추억이었다.     

저녁노을을 바라볼 여유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참 아름답다'라고 칭찬받을 만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노을 지는 모습이 슬프고 아름다워서

마흔두 번이나 의자를 옮기며 마흔두 번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어린 왕자만큼이나 나는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노을을 사랑하는 이유로

나는 노을빛을 볼 수 있는 서향집을 선택했다.

창문 너머 보이는 저녁노을은 분주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잠깐의 여유로, 감정을 맡겨두고

추억에 취해, 노을 바라기를 한다.

우리집에서 본 저녁노을
노을바라기

가끔은, 바쁘다는 핑계로 노을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잦다.

그만큼 내 삶이 각박해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그러다, 퇴근길에 우연히 노을을 바라본 날은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노을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에 한 번, 아니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노을 바라기'를 할 수 있다면


버린 줄로만 알았던 슬픔,

잊은 줄만 알았던 그리움,

묻어 두었던 추억,

이제는 내 것이 아니라 접어둔 사랑까지도….

모두 깨어 난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그토록 오랫동안 노을을 바라보며

가슴이 뭉클했던 이유를

아름다운 저녁노을은 행복했던 추억을

비춰주는 사랑의 거울이라는 것을,

노을 지는 풍경에

내 마음을, 내 그리움을, 내 추억을, 내 사랑을

바라보는 짧은 시간만으로

삶은 더욱 행복해진다는 것을     


- sabana -


#에세 #수필 #노을바라기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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