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Now] 미국이 이란 앞바다에서 쩔쩔매는 이유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속내를 들여다봅니다

by 이상엽
REUTERS_hormuz.jpg 호르무즈 해협 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조건과 역량을 갖춘 이란 ⓒ REUTERS

이란에게 호르무즈는 운신의 폭이자 볼모와 같은 곳이죠.

원유의 주통로인 이곳을 쥐고 있는 한 세계의 외교, 안보, 경제, 산업을 뒤흔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의아하기도 합니다. 이란은 어떻게 바다를 막았을까요? 아무리 좁은 해협이라도 육지도 아닌, 해양을 틀어막을 수가 있는 걸까요?


법적 군사적 지위가 이 나라에게 바다 통제권을 부여했습니다.

우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한 페르시아만에서 가장 긴, 1,500km가량의 해안선을 보유했습니다. 덕분에 이 바다에서 가장 넓은 영해와 경제수역을 확보했죠. 기민한 군사행동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일찍이 이란은 해협 내의 주요 섬들을 장악, 거점화했고 이러한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해협 전반을 통제하는 패권을 쥐게 됐죠. 이걸 지난 편에서 해양 부동산, 해양 초소라고 표현했는데요.


오늘은 관점을 조금 달리해 보고자 합니다.

호르무즈의 항행 시스템. 즉, 이 바다에 설정된 선박의 운항경로가 이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ig.ft.com_TSS라인.PNG 좁은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유조선의 통항로는 TSS로 제한된다 ⓒ ig.ft.com


해상 고속도로 'TSS'

TSS. Traffic Separation Scheme, '선박 교통분리제도'라고 풀이되는데요.

UN 산하의 국제해사기구(IMO)가 설정한 항로를 말합니다. 해상 고속도로, 그러니까 바다 위에 유조선 전용도로를 만들었다고 보면 되는데요. 상행과 하행으로 구분된 일방통행로. 육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내부순환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TSS 시스템의 목적은 선박 통행의 효율과 안전을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주요 해협과 항만 인근, 선박들이 붐비는 바다에는 TSS가 설치돼 있죠.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말라카 해협. 영국과 유럽대륙 사이 도버 해협. 대한민국의 태안 해협. 페르시아 만의 호르무즈 해협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통행량: 통과하는 선박수 자체가 워낙 많고 ▲선박크기: 배들이 육중한 데다 ▲에너지안보: 석유가 오고 가는, 외교안보적으로 아주 민감한 곳이어서 '지정된 항로'가 반드시 필요하죠. 각국에서 온 크고 중요한 배들이 제 멋대로, 아무 길로나 다니다 사고가 나거나 시비가 붙으면 안 되니까요.


무엇보다 TSS 항로의 가치는 '수심'에 있습니다.

흔히 슈퍼탱커라고 불리는 20만 톤급 이상의 초대형유조선은 물 밑으로 최소 20m 이상 잠겨가야 하는데 TSS는 25~30m의 깊이를 제공합니다.

기름을 싣고 가는 선박의 입장에서도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도 TSS는 좌초나 충돌 위험 없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최적의 루트인 거죠.

호르무즈 해협의 수심. 짙은색 구간이 유조선의 통로라고 볼 수 있다 ⓒ Frontiers of marine science


참고로, 호르무즈 TSS 항로의 폭은 약 9km입니다.

출항로와 입항로가 3km씩. 그리고 두 항로를 구분하는 완충지대가 3km로 설정돼 있죠. 여기서 출항로는

페르시아 만에서-오만 해안을 거쳐-인도양으로 나가는 길. 입항로는 반대로, 인도양에서-이란 해안을 거쳐-페르시아만으로 들어오는 길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란이 TSS를 외나무다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통과하는 입장이 아니라 통제하는 입장에서 이것만큼 좋은 환경은 없다고 할 수 있죠. 유조선을 비롯해서 페르시아만을 드나드는 선박들은 최소폭 30km의 좁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폭이 9km로 제한된 'TSS'라는 경로를 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란 입장에서 이건, 휘어잡기 딱 좋은 환경이죠.


페르시아만이라는 넓은 바다를 다 신경쓰지 않아도

협소한 호르무즈, 그중에서도 유조선이 반드시 지나가는 TSS만 잘 보고 있으면 모든 상황을 관제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의 배가 언제 들어오는지, 무엇을 얼마나 싣고 나가는지, 또 유사 시에는 어느 지점을 효율적으로 압박할 것인지 말이죠.


실제로 이란은 중동에서의 정치, 군사적 충돌이 격화될 때면 GPS 교란, 기뢰 설치 등을 자행하면서 이곳을 강하게 뒤흔들었고 TSS라는 터널 외에 다른 길이 없는 배들은 멈춰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박의 통행의 안전과 효율을 목적으로 생긴 TSS가 세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목줄'이 돼버린 아이러니. 이걸 '애초부터 이란의 지도가 그렇게 생겨먹은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비디오로 만나기 "호르무즈 해협에 숨겨진 비밀, 해상 고속도로의 정체는?"


글 = 이상엽 ⓒ 3POINTS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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