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칸블루스: 말리편 ②
'아프리칸 블루스'
지정학적 시각에서 아프리카의 삶과 애환을 들여다봅니다
말리의 갈등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또 달라집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지하디스트(Jihadist)의 유입과 반군들의 근거지화라는 아주 극한 상황들이 말리를 위협하죠.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알카에다 이슬람 마그레브(Al qaeda in the Islamic Maghreb, AQIM)의 등장입니다. 알제리 이슬람주의자 중심의 이 무장단체는 200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해서 알제리와 접한 말리 북부 국경으로 반경을 넓힙니다. 그 지역의 불안정한 치안이 이들에게 길을 열어준 셈이죠.
대혼란이 시작된 건 2012년입니다. 2011년 '아랍의 봄(Arab Spring)이 일어나면서 아랍·아프리카 세계의 정치 판세가 급변하죠.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불길은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아라비아반도 예멘까지 아랍 전역으로 확산됩니다. 이 시기 말리 북부의 투아레그족(Tuareg)도 거센 분리 운동을 일으키죠.
투아레그족은 리비아에 파견 갔던 용병 출신들을 중심으로
<아자와드 민족 해방운동(Azawad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일명 'MNLA'를 조직하고 대대적인 반군 활동에 나서는데요. 여기에 맞대응하지 못한 말리 정부는 결국 2012년 3월 군부 쿠데타로 전복되고 대통령은 축출됩니다.
아자와드 해방운동은 무력해진 정부군을 누르고
▲팀북투(Tombouctou) ▲가오(Gao) ▲키달(Kidal) 같은 말리 북부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고는 '아자와드 독립국가'를 선포합니다. 프랑스령 수단이었던 식민지 시절, 어쩌면 그전부터 갈망하던 자치를 실현한 거죠.
물론 아프리카 연합(AfricanUnio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들의 무장봉기를 비난했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말리 내부의 혼란 →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침입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말리가 혼란한 틈을 타서 북부 지역으로 침입합니다.
이미 북부는 투아레그족의 아자와드 민족 해방운동(MNLA)이 점령한 상태였기 때문에 두 세력이 마주치게 되는데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알카에다 마그레브(AQIM)는 우선 투아레그와 손을 잡습니다.
말리 정부를 공동의 타도 대상으로 삼고, 투아레그족의 도시 점령에 힘을 보태면서 그들 편에 선 것이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갈라졌고 말리 북부 지역의 패권 양상도 변합니다.
아자와드 민족 해방운동과 알카에다 마그레브.
겉보기엔 둘 다 무슬림이면서 무장세력이지만, 알고 보면 둘은 태생도 목적도 다릅니다. 어쩌면 이교도 보다 섞이기 힘든 사이가 아닐까 싶은데요.
투아레그의 아자와드 민족 해방운동은 민족주의, 세속주의를 기반으로 합니다.
문자적이고 극단적인 무슬림 세력과는 결이 다르죠. 또, 아자와드의 목표는 말리 북부의 자치 또는 독립입니다. 이념으로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들끼리 우리만의 땅에서 선 긋고 살고 싶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반면에, 알카에다 이슬람 마그레브는 근본주의 세력입니다.
급진적인 무슬림 성향의 다양한 민족들이 모인 지하디스트, 이른바 성전(聖戰)을 추구하는 단체죠. 이들의 목표는 *칼리프 국가, 이슬람 신정 국가의 수립입니다.
*칼리프(Caliph):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자처함
MNLA vs AQIM
본질도 목표도 다르다
세력 다툼에서 승리한 쪽은 알카에다 마그레브입니다.
말리 북부를 장악한 이들은 샤리아(Shariah)라는 이슬람 율법을 가혹하게 실현하는데요. 공개적인 채찍질, 무도 금지 같은 전근대적인 일들을 자행하면서 국내외적으로 파장을 낳습니다.
그렇다면, 북부 원주민이었던 투아레그족은 왜 - 알카에다 마그레브(AQIM)에게 밀려났을까요?
학계에서는 북부 말리에서 아킴이 패권을 잡은 요인을 몇 가지로 분석합니다.
1. 먼저, MNLA를 통해 투아레그 현지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점.
2. 동시에 투아레그족 일반인들을 광범위하게 지원했다는 점
3. 시간이 지나면서 아자와드민족해방운동이 오히려 지역 주민들을 학대하자
민심을 고려해 아자와드와의 동맹을 종식했고
4. 이를 토대로, 결국 북부에서 아자와드 세력을 몰아내면서 경쟁자를 제거한 점을
성공 요인으로 봅니다.
'성공'이라는 말이 꼭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렇게 북부를 장악한 AQIM은 자신들의 통치 이념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면서 패권을 굳힙니다.
아자와드민족해방운동, 말리 정부의 붕괴, AQIM 같은 극단주의 세력의 등장까지.
2000년대 초중반 말리는 혼돈의 시간을 보냈고 결국 2013년, 말리 임시정부는 프랑스에 도움을 청합니다. 군사개입 요청이자 실질적인 통치 위임이죠.
군사개입을 결정한 프랑스는 해외 작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원을 쏟아붓습니다.
세르발 작전(Opération Serval, 2013)과 바르칸 작전(Opération Barkhane, 2014)을 펼치면서 사헬 북부 일대의 지하디스트를 궤멸시키는데 주력했죠. 당시 유럽의 파트너들과 아프리카 5개국 연합군도 여기에 동참합니다.
과거의 정복자를 구원자로 초청하다
다행스럽게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나선 결과 말리의 혼란은 일단락됐고
2015년 말리 정부와 투아레그는 평화협정까지 체결합니다. 이와 발맞춰서 <G5 사헬>이 구성되죠. 사헬 5개국인 ▲말리 ▲모리타니 ▲니제르 ▲차드 ▲부르키나파소는 지역 안보 강화와 조직적 범죄에 공동 대응하기로 약속합니다.
물론 이야기가 쉽게 끝나지는 않습니다.
<G5 사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둘씩 탈퇴하더니 결국 2023년 최종 해체되죠. 나라마다 생각이 다르고 득실이 다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북부의 지하디스트 세력이 죽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들은 사막과 산악 곳곳으로 파고 들어서 게릴라화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외세의 강력한 폭격에도 결국 살아남아 끝내 권력을 찾아오는 모습은 무섭고 놀랍습니다.
지하디스트의 게릴라 공격에 노출된 말리인들은 지역마다 *민병대(militia)를 구성하기에 이르는데요.
이것 역시 문제가 됩니다. 민족, 공동체마다 힘이 생기니까 서로 샅바 싸움을 하게 되는 거죠. 힘이 없어도, 힘을 갖춰도 고통스러운 날이 이어집니다.
*민병대(民兵隊): 정규군에 속하지 않은 무장단체. 일종의 시민 의용군
이후로도 말리의 안보 불안은 여전히 우후죽순처럼 나타났고
2020년과 2021년 다시, 두 차례나 군부 쿠데타를 겪습니다. 구원군으로 왔던 유럽도 2022년 이 땅에서 철수했습니다. 해결하지 못한 복잡한 문제는 결국 말리인들에게 다시 돌아왔죠.
현재 말리 대통령은 '아시미 고이타' 장군.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여전히 군 장교가 나라를 집권하고 있습니다. 고이타 정부는 모든 정당을 해산했고, 반대 세력과 기득권들을 싹 숙청했죠. 거기에다 대통령 임기도 2030년까지 연장한다는 말이 돌자 말리인들이 대응에 나섰습니다.
지난 5월 초, 수도 바마코에서는 시민 수백 명이 군사 정권에 반대하며 시위했는데요.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20년 넘게 군부독재를 겪은 트라우마가 시민들을 일으켜 세웠다고 봅니다. 아직 민주주의의 길은 험난해 보이지만 말이죠.
유엔개발계획은 매년 '인간개발지수(HDI)를 발표합니다.
수명, 지식, 국민소득, 생활수준 등을 기준으로 국가의 성취도를 평가한 지표인데요. 2025년 리포트에 따르면 말리는 전 세계 188위. 세계 최하위권이고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점수가 가장 낮은 축에 속했습니다.
HDI 188위, 평화가 반드시 와야 할 땅
식민 역사 이후로 이어진 분쟁과 빈곤. 뚜렷한 공용어 없이 토착 언어 13개가 공식 언어인 나라.
말리가 이 지독한 시간들을 이겨내고 평화와 화합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모쪼록 말리의 평화, 살람(Salam)을 기원합니다.
▶비디오로 만나기: https://youtu.be/huN5mAz3wzM?si=U8b1zWPEMeWA-OL4
글 = 이상엽 ⓒ 3POINTS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