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째 내란, 쿠데타…이 나라엔 왜 평화가 없나

아프리칸블루스: 말리편 ①

by 이상엽

'아프리칸 블루스'

지정학적 시각에서 아프리카의 삶과 애환을 들여다봅니다


평화가 필요한 땅, 아프리카 말리


말리는 잘 나갔던 나라입니다.

13세기부터 중세까지 말리 제국과 송가이 제국을 거치면서 서아프리카의 패권을 손에 쥐었죠.


제국의 패권은 지정학적 특성과 관련이 깊습니다.

아프리카의 '사헬(Sahel)'지대에서 태동한 말리 제국은 '사하라 종단 무역의 허브' 자리매김했습니다. 당시 사헬은 유럽과 아프리카 교역의 통로이자 유목민들의 나들목이었죠. 말리는 그 사헬의 중심에서 유럽-아프리카-아랍을 연결하는 '아프리칸 실크로드' 같은 역할을 한 겁니다.

AdobeStock_395414101.jpeg 말리의 젠네 모스크(DJENNE Mosque) ⓒ adobestock

Ⅰ. 사헬을 삼킨 풍파

아랍어로 사헬(ساحل)은 가장자리, 경계, 그리고 해안이라는 뜻이 있는데요.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위·아래, 노란색·초록색 영역이 확실히 구분됩니다. 위쪽, 북쪽은 사하라사막입니다. 동서의 길이가 5천 km에 달하는, 나일강부터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이죠. 아래쪽, 초록색이 짙어지는 대륙 중앙부부터는 기후가 달라지는데요. 우리가 '사바나'라고 하는 열대 초원 그리고 고온다습한 우림 지역이 나타납니다.


'사헬'은 사하라 사막과 열대 우림의 중간지대입니다.

아까 경계, 해안이라는 뜻이 있다고 했는데요. 사막의 남쪽 경계를 뜻합니다. 사막을 바다라고 봤을 때, 거기로 접하는 해안이라고도 볼 수 있죠.


이걸 좀 어렵게는 '전이 지대(轉移地帶)', transition zone이라고도 하는데요.

서로 다른 특성의 자연 공간이 접하는 곳 일종의 완충지대 같은 개념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순천만도 전이 지대입니다. 육지와 바다 경계에 형성된 습지처럼 사헬 역시 그런, 접점 지역의 특질이 있습니다.

AdobeStock_135321306.jpeg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의 아래 지역 '사헬(sahel)' ⓒ adobestock

사실 이건 나라를 기준으로 볼 때 더 명확합니다.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알제리 보다는 아랫동네. 대륙의 중심부인 카메룬이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보다는 윗동네 나라들을 '사헬 국가'라고 합니다.


말리를 비롯해 서아프리카에서 축구로 알아주는 세네갈(Senegal), 해산물 수출 많이 하는 모리타니(Islamic Republic of Mauritania), 그리고 동쪽으로는 수단(Sudan), 에리트레아(Eritrea) 같은 나라들이 대표적인 사헬국입니다.


Ⅱ. 침입자 앞에 선 공동체

사헬에서 번성한 말리는, 사헬에서 아파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점령, 이후 민족 분리주의 움직임 그리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등장과 지속된 내전으로 사헬 국가들은 정치·경제·안보 전반에서 극심한 불안을 겪었죠. 그중에서도 특히 말리는 그 풍파를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19세기로 가볼까요?


제국주의는 민족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입맛에 따라서 때로는 아주 치밀하게, 또 때로는 아주 쉽게 땅에 선을 그어버리죠.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언어와 문화 그리고 동일한 생활방식으로 엮여있던 민족공동체들이 한순간에 뒤섞여버리기도 합니다. 마치 오스만제국 해체 이후의 중동처럼 사헬, 서아프리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횡으로 종으로 아프리카를 지배한 영국과 프랑스는 사헬에도 손길을 뻗칩니다.


1800년대 후반 프랑스는 서아프리카에 진출하면서

이곳을 아예 *서아프리카 연방(AOF)이라는 대규모의 식민 구역으로 묶어버리죠. 당시 식민 연방의 총괄본부는 다카르(현재 세네갈의 수도)였습니다.

프랑스령서아프리카.PNG 서아프리카 연방(프랑스령 서아프리카, AOF) ⓒ Wikipedia
서아프리카 연방(AOF; Afrique occidentale française)
1895년 설립되어 1958년에 해체된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 연방체


지금의 말리 지역은 서아프리카 연방 중에서도, '프랑스령 수단'으로 불렸는데요.

프랑스 식민 지배의 역사에서 말리 남북 갈등의 두 가지 단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먼저, 당시 서아프리카 연방의 프랑스령 수단을 구분 짓던 행정구역 상의 경계선이 오늘날 현대 국가 말리의 국경선이 됐다는 점. ②또, 당시 프랑스가 프랑스령 수단의 남쪽, 그러니까 현재 말리 남부에 거점을 잡고 이 나라에 본격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짚어보죠.


말리 분열의 배경 ①
민족


서아프리카 연방을 만든 프랑스는 그곳을 경계선을 긋고 지역마다 이름을 붙입니다.

자 여기는 세네갈, 여기는 모리타니. 음, 여기는… 상아무역을 많이 하니까 상아해변. 그리고 여기 니제르 강 근처는 '프랑스령 수단' 이렇게 말입니다.

연방의 행정구역을 구분한 것인데, 쉽게 말하면 연방 내에 '주(state)'를 만든 셈입니다. 앞서 짚어본 니제르 강 근처 프랑스령 수단이 → 현재의 '말리'가 됐죠.


프랑스는 현재의 말리 남부로 침투해서 거기에 본부를 세우고 영토를 북쪽으로 확대해 갑니다.

원래부터 거기 살던 사람들은 선택해야 했죠. 프랑스에 협조하느냐, 맞서느냐. 식민정부가 만든 인위적인 변화 앞에 서게 된 겁니다.

AdobeStock_257627693.jpeg 말리 북부에 거주하는 자치 부족, 투아레그 ⓒ adobestock


당시 프랑스령 수단의 북쪽에서 살던 투아레그족(Tuareg)도 그랬습니다.

유목 기반 민족인 투아레그는 사막을 떠돌면서 여기저기에 걸쳐 지냈던 사람들입니다. 프랑스가 나타나기 전에는 사헬 북부, 사하라 사막의 남부쯤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하는데요.


정체성이 강하고 본인들만의 라이프스타일도 분명한 사람들인데 열강은 그런 것까지 살펴줄 여유가 없었죠. 프랑스는 팀북투, 가오, 키달 같은 북부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투아레그의 중심지를 프랑스령 수단으로 편입시킵니다. 그렇게 투아레그족은 프랑스 그리고 이후 말리와의 질긴 인연을 시작합니다.


Ⅲ. 우린 그저 우리이고 싶다

프랑스령 수단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개성이 강한 투아레그는 잘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식민정부와 투닥거렸고 자기들만의 스타일을 고수했죠. 반면에, 당시 말리 남부는 농사짓는 정착 민족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비교적 순응적이고 협조적이었고 프랑스 식민정부와도 큰 탈 없이 지냈죠.


특히, 오래전부터 니제르 강을 따라 살아온 '밤바라족(Bambara)'은

식민정부의 교육제도에 적극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습득한 언어와 업무지식으로 식민행정에도 참여할 수 있었죠. 프랑스는 이들을 관료로 등용시키면서 간접 통치를 지속해 갑니다.


또, 용맹했던 밤바라 용사들은 1,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으로 모집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남부 토착민들은 명성과 신뢰를 쌓으면서 프랑스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식민정부는 남부지역에 힘을 더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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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레그는 그저 투아레그이길 원했다. (왼쪽) 말리 국기 (오른쪽) 유목 생활을 하는 투아레그족


이질적 공동체의 시작
자, 오늘부터 넌 말리 사람이야


남북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1960년, 독립 이후의 일입니다.

프랑스령 수단은 <말리 공화국>으로 독립하는데요. 외세는 떠났지만, 그 그림자는 여전했고 내부는 쉽게 단합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북부 투아레그족은 '말리인'이라는 정체성에 공감하지 못했죠.


비록 우리가 프랑스한테 점령받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유목민이고 '투아레그' 사람인데, 갑자기 '자, 너 이제 말리 사람.' 이렇게 된 셈이니까 그럴 만도 합니다. 아무런 정치적 합의도 민족 스스로의 자각도 없이 말이죠.


식민지의 행정 경계선이 독립국가의 국경이 되고
내가 갑자기 그 나라의 국민이 되었다는 사실.
투아레그에게 말리는 이질적인 공동체였습니다.


그렇게 투아레그는 말리 북부를 중심으로 반정부 투쟁을 지속하고

말리 남부의 바마코 정부도 그런 투아레그를 주권국민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남부에게 북부는 문제가 많고 위험한 세력이었던 거죠.


▶비디오로 만나기: https://www.youtube.com/watch?v=zrp6mXccXIQ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글 = 이상엽 ⓒ 3POINTS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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