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칸 블루스: 나이지리아편 ①
'아프리칸 블루스'
지정학적 시각에서 아프리카의 삶과 애환을 들여다봅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그 16강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만난 상대는 나이지리아. '슈퍼이글스'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아주 매섭고 강렬한 플레이를 하는 아프리카의 강호죠.
치열한 공방 결과 경기는 2:2로 비겼습니다.
골 넣는 센터백 이정수의 첫 골과 오른쪽 포스트로 한번 튕겨 들어간 박주영의 프리킥은 아직도 회자되곤 하는데요. 암튼 그렇게 대한민국은 슈퍼이글스 나이지리아와 무승부를 이뤄냈고 어렵게 조별리그를 통과합니다.
축구 말고 또 나이지리아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뭐가 있을까요?
아프리카. 검은대륙. 정글, 사막. 사자나 코끼리. 빈곤, 기아…이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해안과 바다, 인구 대국, 기독교, 극단주의, 영어, 그리고 우리를 뛰게 하는 비트까지. 우리는 나이지리아를 꽤나 모르고 있습니다. 낯섦과 선입견은 붙어 다니곤 하죠.
나이지리아는 모자이크(Mosaic)에 비유되곤 합니다.
민족, 문화, 종교, 언어, 지리적 특성까지. 무수히 많은 조각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장면을 이룬 그런 국가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부터가 그렇습니다.
이 나라의 총인구는 약 2억 3천만 명. 아프리카에서 단연 1등이고, 세계로 봐도, 6위나 됩니다. 같은 아프리카에서 사람 좀 많다는 이집트나 에티오피아가 1억 명 수준이고, 어나더 레벨인 인도나 중국을 빼면 나이지리아보다 사람이 많이 사는 나라는 미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정도입니다. 사람 수로는 어디 가서 안 밀리는 브라질, 방글라데시도 나이지리아는 못 당하죠.
이 인구와 뗄 수 없는 것이 '출산율'인데요.
통계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나이지리아의 출산율은 세계 10위권에 속합니다. UN에서는 이렇게 높은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을 근거로 2050년에는 이 나라의 인구가 세계 4위를 찍을 것이라고 전망하죠.
알아둬야 할 건, 이 어마어마한 2억의 인구가 250개가 넘는 아주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됐다는 점입니다.
'주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요루바족 이그보족 그리고 하우사-풀라니족. 이들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고요. 이조, 카누리, 타브족을 비롯한 나머지 200개 넘는 소수민족들의 비중이 각각 1~2%씩 됩니다. 국가라는 한 화면을, 아주 다양하면서도 세분화된 픽셀들이 채우고 있는 셈이죠.
해상도가 높은 나라
사실 하나의 국가 안에 다채로운 민족, 여러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불안한 일입니다.
역사적인 배경, 각 민족들의 지향점과 이해관계, 또 각자 역량이 다를 것이고요. 생활패턴도 서로 딴 판인 사람들이 한 공동체로 모인 거니까 멋지면서도 위태로운 면이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힘의 우위'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것은 곧, 격차와 소외, 갈등과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민족 국가에서 '사회통합'이란 끝나지 않는 과제인 셈입니다.
실제로, 같은 서아프리카에 있는 '말리'의 경우
북부 지역의 투아레그족과 남부 민족들이 대립했고요. 옆 동네 코트디부아르 역시 무슬림 그룹과 기독교 그룹이 서로 누가 진짜 국민이냐를 놓고 맞서다 내전을 겪었습니다.
물론 나이지리아도 비슷한 걸 경험했죠.
앞선 나라들처럼, 민족들 간의 다툼이라기보다는 외부 세력의 개입과 그로 인한 지역 격차가 갈등을 부른 겁니다. 남부 vs 북부의 문젠데요. 우선 이 나라 국토가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부터 짚어봅니다.
나이지리아는 서아프리카 중심부에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사헬' 국가인 차드와 니제르. 동쪽에는 열대국가인 카메룬. 서쪽으로는 해안 국가인 베냉. 남쪽은 바다를 품은 기니만과 접하고 있죠.
위로는 사막의 영향을 받는 건조지역.
중앙부는 고온다습한 열대우림, 아래로는 해양이 펼쳐지는 것이 이 나라의 모습입니다. 기후, 생태, 여러 문화가 얽히는 지정학적 특성이 나이지리아의 어제와 오늘을 만들었죠.
Transition - zone: 전이 지대
그럼, 동서남북, 각기 다른 조각들은 나이지리아라는 '총체'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나이지리아를 말할 때 늘 등장하는 주제가 '남북 격차'입니다. 여기에는 영국이 큰 영향을 줬죠.
20세기 초 나이지리아에 들어온 영국은 이 나라를 식민지배하면서 남부 지역은 직접 통치, 북부 지역은 제한적으로 간접 통치합니다.
왜 차이를 둔 걸까요?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또 지리나 자원의 측면까지 영국이 봤을 땐 남부를 직접 잡는 편이 더 수월하고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지도를 보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나이지리아 북부는 '사헬'과 접합니다.
사헬의 영향을 받는다는 건, 기후, 문화, 안보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는 말인데요. (1) 일단 건조 지역이기 때문에 땅이 비옥하지 못하다는 점. (2)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 (3) 안보적으로는 극단주의, 테러조직과 연계될 위험이 높다는 측면을 견지해야 합니다.
이걸 식민통치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인프라 개발이 쉽지 않고, 자기들의 군사력이나 세계관을 세팅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뜻입니다.
이슬람의 전파 그리고, 사하라 종단 무역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된 건 11세기 무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북아프리카-아랍권을 잇던 <사하라 종단 무역(Trans Saharan trade)>이 활성화되고 사막 상인들이 오고 가면서 자연스럽게 알라의 세계가 이 지역에 이식됐죠.
영국이 나이지리아에 들어오기 전인 1,900년대 초에는
'소코토 칼리파국(Sokoto Caliphate)'이라는 연합체가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습니다. 소코토는 나이지리아 북서부의 도시, 칼리파는 이슬람의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데요. 같은 의미로 소코토 술탄국이라고도 합니다.
서아프리카 지역 토후국들이 모여서 생겨난 이 연합체는
1800년대 초반부터~1900년대 초반까지 100년 정도 유지됩니다. 오늘날의 나이지리아, 그리고 카메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를 아우르는 꽤나 큰 땅을 차지하기도 했죠.
이렇게, 나이지리아 북부는 11세기 이후로 이어져온 이슬람 사상과
거기서 비롯된 '신정 통합 체제(theocracy)'의 영향으로 그들만의 사회질서를 단단하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을 이룬 사람들은 하우사족 그리고 풀라니족이죠(보통 둘을 묶어 하우사-풀라니족으로 부릅니다).
하우사족은 행정과 상업 분야, 유목 출신의 풀라니족은 정치와 종교 영역을 담당하면서 북부 나이지리아를 지탱했습니다.
영국의 전략, 정복자의 셈법
나이지리아 땅에 들어온 영국은 이런 전후 상황을 잘 체크했죠.
그래서 전략적으로, 저들의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전통과 위계를 인정하면서 통치권을 맡깁니다. 현지민들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쌓으면서 실리를 챙긴 건데요.
개성 뚜렷하고, 자존심 세고, 결속력 강한 이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시스템을 씌우면
강하게 저항할 게 뻔한데 그럴수록 자기들의 통치 비용만 커진다는 점을 영국은 계산했던 겁니다. 자치권을 준다고 해서 자기들의 위상에 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요.
정복자의 셈법은 지극히 전략적이고 경제적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영국이 나이지리아에 저지른 일'을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글 = 이상엽 ⓒ 3POINTS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