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와 개인의 존엄 사이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연역해 내는 진실하면서도 황당한 이야기는 사실 사랑이 하늘을 항해 외치는 절규이자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의 존엄이 모든 사람을 향해 호소하는 구원일 것입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서문 中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자신의 에너지와 열정을 온전히 쏟아 공부했던 순간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통역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았던 곳이 바로 유학 생활을 했던 중국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나라지만, 중국 국적의 지인들과 정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강한 국가 중심적 사고나 서로 다른 역사 인식 사이에 간극을 느끼게 되고 괜스레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곤 했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 '왜 그들은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을 대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현대 중국의 한 역사적 시점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되돌아보고 문학이라는 방식으로 증언하고 승화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흔문학, 반성문학의 성찰은 정치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구조가 아닌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과오에 한정되었다.
이렇게 국가 체제 자체를 문제 삼지 못하게 되면서 어쩌면 그들은 첫 단추 자체가 잘못 끼워진 채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옌롄커는 이러한 역사적 뒤틀림을 포착하여 '혁명이라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 왜곡된 욕망은 비난의 대상인가, 아니면 억압된 인간 존엄이 비틀린 방식으로 드러난 것인가?'를 작품 전반에 걸쳐 묻는다. 작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우다왕과 류롄의 성적 관계를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두 인물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마오쩌둥의 숭고한 지시가 새겨진 팻말을 사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는 혁명과 이념, 심지어는 불륜을 금기시하는 윤리마저도 개인의 욕망 앞에서는 흔들릴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자는 작품 속 인물들의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마오쩌둥이 말하는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선전 구호의 '인민'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사유하게 된다. 우다왕과 류롄이 혁명시대의 선전 언어들을 사용해 대화하며 사적으로 소비하는 모습은 혁명시대의 언어가 얼마나 가변적이고 추상적인지를 인식시켜 주며, 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인민'과 '혁명을 위한 행위'는 왜곡된 개인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언어로 변질된다.
그러나, 인물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각 인물에 내재된 사적 욕망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인간의 존엄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옌롄커는 서문에서 이 작품은 존엄과 사랑을 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아는 사랑과 존엄이 작가가 말하는 그것과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옌롄커는 작품 속에서 숭고하거나 고결한 사랑과 존엄을 말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나 계급에 의해 억눌린 삶 속에서 자신들의 감각과 자신들의 자유 의지로 선택하고, 행하고, 욕망한다는 것 자체가 존엄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리라. 그의 존엄의 정의가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들을 타락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통해, 구조와 체제가 권력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한, 어느 국가나 역사적 뒤틀림이 있을 수 있으며, 이에 의해 인간의 존엄 역시도 제약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약이 비단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 나 역시 이전에 느꼈던 서늘함을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한 혐오로 연결하지 않고, 이해라는 영역으로 유보해 둘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이해'로 바라보는 이유는 인생에서 가장 열정으로 빛나던 시기를 보냈던 중국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이해'는 잘못된 행위에 대한 동의나 면죄가 아니다. 나의 '이해'는 개인의 행위를 곧바로 한 국가, 한 민족의 본질로 환원하는 행위에 대한 경계이다. 혐오의 시대에 내가 붙들고 있는 또 다른 사랑과 인간 존엄에 대한 호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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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혁명' 中 3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