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프란츠 카프카

구조적 오류와 무력감 사이에서

by 도토리




<소송> 프란츠 카프카


"누군가 요제프 카를 모함한 게 틀림없다.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는데도 어느 날 아침 그가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카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모든 곳이 다 평화롭고 모든 법이 똑바로 서 있는데 누가 감히 집에 있는 그를 급습한단 말인가?"



인간이 부조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개인마다 크게 다르다. 스스로에게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이고 강렬한 반응을 보이는 성향의 나에게,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독서 과정 전반에 걸쳐 상당한 심리적 피로를 안겨주었다.

이 책을 접할 때, 중국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지닌 독자라면 중국의 신조어인 '시엔위(咸鱼)’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본래 소금에 절인 생선이라는 뜻의 시엔위는 절여진 채, 바람에 말려지는 생선처럼 개인의 의지와 목적이 결여된 채 구조적 모순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살아가는 인간을 비유하는 현대적 표현이다. 이유도 모른 채 체포되어 ‘개처럼’ 처형될 때까지 외부의 상황에 따라 끌려다니면서도 실질적인 해결이나 저항을 하지 못한 요제프 K(이하 카), 그리고 잘못된 관습과 구조 속에서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무기력한 상태로 말려지고 있는 소금에 절인 생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연상은 카프카가 소송에서 묘사한 부조리와 개인의 무력감 사이의 상관성을 해석하는 하나의 축이 된다.

카프카는 독일어를 사용하며 체코에서 거주하는 유대인으로, 소속감이나 정체성이 모호한 경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신민이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설명되지 않는 불안함을 포착하여 소송이라는 작품을 통해 형상화한다.

당시 거대한 관료 국가였던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문명과 제도의 발달로 절정에 이른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런 만큼 절대적 관료주의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가치는 가차없이 소외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러한 부조리함을 카프카는 카가 영장도 없이, 사유도 모른 채, 체포되는 모습으로 구현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집단의 제도나 질서 속에서 개인의 희생을 어느 정도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작품 속에는 체포 대상인의 아침 식사를 임의로 취식하거나, 뇌물을 요구하고, 취조를 명목으로 개인의 사적 공간을 무단 사용하는 등 인물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부조리한 양상이 묘사된다.

독자들이 가장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러한 부조리를 부당하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인 저항의지가 없는 체포 당사자 카이다. 작품 속에서 카는 태형리에게 가차없이 맞고 있는 감시자들을 보고 자리를 떠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동일하게 그 역시 타인이 겪는 부조리를 목격하였으나 회피라는 방식으로 외면한 것이다. 카프카는 우리가 아는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작은 상황들을 사유 없이 수용하게 되면 어떤 사회가 되는지 빈민가에 위치한 법원에 대유하여 구체화한다. 질서를 수호하는 누구보다 숭고한 위치에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누추한 장소에서 작동하는 법원, 또 그에 의해 불합리하게 체포되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거대한 비상식이 상식인 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카프카는 꿈과 실제 그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문체를 구사한다. 이러한 문체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은 독자를 수동적 위치로 전환하여, 요제프 카가 느낀 무력감을 독자에게 공명시키는 장치로 사용된다.
'소송'은 현대의 우리 역시 카프카 시대와는 다른 형태의 부조리한 관습과 구조, 윤리, 인간관계 등에 예속된 채, 절여진 생선처럼 서서히 말려지고 있음에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느낀 피로의 정체는, 나 역시 속한 조직에서 불합리함을 느낌에도 저항과 변화를 말하던 모습을 점차 상실해가며, 말려지는 생선처럼 그에 따르는 무력함을 체념한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 함께 들을 음악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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