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과 배제 사이에서
<80일간의 세계 일주> 쥘 베른
"세상은 작아졌어요. 이제는 백 년 전에 비해 열 배는 더 빨리 세상을 돌 수 있으니까요."
이 작품은 산업혁명의 수혜자가 아니었던 국가에서 살아가는 독자에게는 당시 특정 문명권에만 허락되었던 유토피아적인 이상세계를 묘사하는 책으로 읽혀질 것이다.
프랑스 국적의 작가 쥘 베른이 작품의 주인공을 영국인으로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19세기는 그야말로 영국의 황금기였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시대를 직접 목격한 쥘 베른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당시 인류 문명의 찬란한 발전을 기록해야만 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풍요로 가득 찼던 산업혁명 시대의 이면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산업혁명으로 인한 문제에 더 시선을 맞추었던 디킨스, 개스켈, 마르크스와 달리 쥘 베른의 시선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전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무엇을 잃었는가를 말하고자 하였다면, 쥘 베른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무엇이 더 좋아졌는가, 인류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와 같은 보다 낙관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2차 산업혁명 시기로 산업혁명으로 인한 성과와 근대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던 시대였다. 세상의 진보와 시대의 발전에 굉장히 민감했던 쥘 베른이 당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노사갈등과 빈곤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쥘 베른은 책 속에서 이것을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당면한 사회 문제가 아닌, 미래에 인류가 어떤 식으로 바뀔지, 그리고 인류의 궤적이 앞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갈 것인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증기기관, 내연기관, 수에즈 운하 건설 등으로 한층 더 가까워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알렉산더 포그가 여행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영국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 국가가 대다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쥘 베른이 제국주의를 옹호한다거나 정당화하는 논조로 이 책을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19세기 영국신사는 '단촐한 가방'과 '세계 어디나 통용되는 묵직한 영국 은행권 한 뭉치'만 가지고도 장벽 없이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식민지 문명을 향유할 수 있었던 제국주의적 시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식민지 국가 국민의 입장에서 탈식민지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쥘 베른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들만의 헤게모니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식민 제국주의의 폭력성, 산업혁명에서 파생된 문제, 기술 발전의 이면 등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많은 부분들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대의 작품이 모두 다 사회 문제를 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닌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 작품은 19세기 강대국 남성들이 세상을 얼마나 낙관적으로 봤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이자, 단순한 인류 기술 발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속에서는 표준화된 시간에 대한 언급이 비교적 잦다. 이는 기술 발달로 인해 인류는 편리함을 누리게 되었지만 반면에 인간이 기술에 예속되는 상황이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간이다. 책에서는 시간을 지켜야 하는 여행인 만큼 시간이 자주 언급된다. 현대인들 역시 시간이라는 개념에 아주 예속되어 모든 생활을 시간에 따라 살고 있으니, 이 점이 근대의 영국 신사와 공통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에게 남겨지는 질문이 있다. 2차 산업혁명의 휘황찬란한 모습을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이 가득해 보인다. AI 시대인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분명 더 편리하고 발전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옛날 그 찬란한 문명 발전으로 기대를 품었던 당시 사람들보다 다르게 다소 비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피식민지였으나 현재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국가로 변모한 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기술 발전은 여전히 유토피아를 약속한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소외와 배제는 과거와 형태는 다르지만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19세기 기술 발전이 제국과 식민지 국민 사이에서 소외를 낳았다면, 오늘날의 소외는 기술 발전의 속도에 도태된 이들이 실업이라는 형태로 배제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비관과 불안은 기술이 약속한 유토피아가 인류 전체를 위한 유토피아인지 또 다른 형태의 소외와 배제를 전제로 한 것인지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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