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by 도토리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소년은 아버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입술에 대고 울음을 터뜨렸다.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 빛을 보았다. 죽음은 어디 있지?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Werd' ich entschweben
나 날아오르리라,
Zum Licht, zu dem kein Aug' gedrungen!
그 어떤 눈도 본 적 없는 빛을 향하여!
Sterben werd' ich, um zu leben!
살기 위해 나 죽으리라!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부활하리라, 그래, 부활하리라
-말러 교향곡 2번 5악장 中



클래식을 막 좋아하게 되었을 무렵, '부활(Die Auferstehung)'로도 불리는 말러 교향곡 2번을 직접 들은 경험이 있다. "나 날아오르리라, 그 어떤 눈도 본 적 없는 빛을 향하여! 살기 위해 나 죽으리라! 부활하리라!"라는 말러 교향곡 2번의 선언은 죽음-회의-구원-부활 구조의 형상화이며,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서사와 구조적 유사성을 지닌다. 두려워했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신이 주시는 구원을 통해 부활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노래한 피날레는 삶에 대한 충만한 열정과 죽음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넘어, 죽음이 종말이 아니며 전환임을 암시한다. 장엄하고 강렬한 1악장 초반부를 지나 5악장의 어둠 가운데 한 줄기 빛처럼 연주되는 주제는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 구원 서사는 말러의 교향곡을 연상시키며, 개인적인 청각적 경험을 넘어 문학과 음악이 맞물리는 독특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작중에서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으로 요약된다. 그의 삶이 '끔찍한 것'으로 서술되는 이유는 이반의 삶이 특별히 더 비극적이어서가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타인의 시선에 부합하는 성취를 추구하며 외부의 가치 체계를 그대로 내면화했다는 점에 있다. 이반은 성공을 위해 일했고 겉보기에는 평탄한 삶을 살았다. 이런 그에게 병마가 찾아오고 그는 서서히 죽어간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삶이 과연 정당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를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자신의 삶 전체가 잘못된 방향 속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이반의 불안감은 죽음을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서술된다.
이 책은 이반의 죽음 이후-이반의 삶-죽음이라는 구조를 취하는데, 이반이 죽은 후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죽음의 보편성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춰준다. 책 속에는 '허영'과 '위선'이라는 두 단어로 수렴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여 톨스토이의 인생 말년 철학을 반면교사로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된다. 작가는 이반의 삶을 통해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이면서 실존주의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위기를 단순한 허무주의로 귀결시키지 않는다. 작가는 이반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들이 흘린 눈물 속에서 타자의 연민을 마주하게 된 그는 비로소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나 끝없는 증오를 내려놓고 용서를 깨닫게 된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개념이 아닌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존재론적 전환에 가깝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되는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며 이전에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오던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붕괴되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삶에서 해방되는 초월의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내미는 사랑의 손길이자 일말의 연민을 경험한 것이다. 어쩌면 톨스토이는 구원의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 번은 주어진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 말미에서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는 표현은 바로 그 전환의 순간을 가리킨다.
이러한 흐름은 죽음으로 다시 부활하겠다는 의지를 노래한 말러 교향곡 2번과도 상당 부분 겹쳐진다. 말러 역시 죽음을 종말이 아닌 부활의 변형으로 재구성했듯 톨스토이 역시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반이 마지막으로 본 빛이 진정한 초월과 용서를 통해 발견한 구원의 빛이었는지 죽음 직전 자기 위안의 변형으로 형상화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톨스토이는 작품의 결말에 대한 해석적 긴장감을 유지하며 그 답을 독자에게 유보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독자에게 남는 질문들이 있다. 죽음이 모두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은 채, 각자가 추구하는 성공에 몰두하는 삶이 과연 정당한가. 오직 나만의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도 이반 일리치의 그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아무 의심 없이 정당하다고 여겨온 삶의 방식과 가치 자체가 정당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일 것이다.



—함께 들을 곡
말러 교향곡 2번 부활(Die Auferste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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