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자의 역사 사이에서
<중국근현대사: 4권 사회주의를 향한 도전> 구보 도루
몇 년 전, 대학원 졸업을 위한 번역 논문의 대상 텍스트로 왕샤오보(王小波)의 수필인 '침묵하는 대다수(沉默的大多数)'를 선택했었다. 당시 원문에는 '상산하향(上山下乡)'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도록 한 지침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도시에서 생활하던 지식청년들이 왜 이러한 과정에 참여해야만 했는지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번역 과정에서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내재된 단어들을 곱씹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작품 자체보다 문혁이라는 사건을 겪은 왕샤오보라는 작가 개인과 그 시대성에 생각이 머물고 있었다.
최근 왕샤오보와 비슷한 시대를 통과한 옌롄커의 문학 작품들을 읽으면서 유사한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한때 강대국이었던 중국은 어떻게 급격한 쇠퇴를 겪었으며, 지식청년들은 왜 스스로 유산을 파괴하는 광기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는가.
이러한 역사적 선택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읽게 된 '중국근현대사'는 대약진운동에서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흐름을 따라가며 중국 사회의 형성과 국민 인식의 변화를 이해할 하나의 관점을 제공한다.
구보 도루(久保亨) 교수의 서술은 단순한 개별 사건 나열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형성 과정이라는 틀 속에서 중국 내부 상황과 대외 관계 해석을 통해 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종합해 서술한다. 특히 중국의 국가 형성 과정을 이념적 이분법으로 환원하기보다, 국민당의 실책과 공산당의 정책적 선택을 포함한 다양한 역사적 요소를 바탕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중국 근현대사의 맥락을 거시적으로 이해하게 돕는다.
책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한 국가의 형성과 긴장 완화는 주변국과의 이권과 필연적으로 맞물릴 수밖에 없다는 관점에 도달하게 된다. 중소분쟁으로 중국이 선택한 미국과의 긴장 완화 전략 역시 동일한 연장선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가 단순히 중화민국 건국 시점에 돌연히 나타난 결과라기보다, 내부 결속과 체제 존속을 위한 선택이 축적되어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중국과 소련의 관계에 대한 서술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동일한 이념을 공유하고 있으면 고정된 진영을 이룬다는 통념을 흔든다. 중국과 소련은 일관된 동맹이라기보다, 인접 국가로서 긴장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견제를 지속해 온 관계에 가깝다. 이러한 사실은 흑백 논리로 좌우 진영을 단순하게 구분하려는 우리의 인식을 돌아보게 만든다.
다만, 국제적 고립과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약화된 마오 주석의 당 내 입지를 만회하기 위한 목적에서 발생한 문화대혁명의 구체적 전개 과정과 폐해, 지식인들의 대응에 대해 보다 밀도 있는 서술을 기대했던 나에게 이 책의 서술은 다소 절제되었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는 외부자의 위치에 있는 일본인 사학자로서의 거리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중요한 사건을 심도 있게 서술하기보다 중국 현대사회의 형성 과정을 더 비중 있게 다루기 위한 서술자의 의도된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의 중국은 많은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 역시 동북공정이나 서해 해상 경계 획정 문제와 같이 국가 이익이 얽힌 복합적인 사안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민 간의 감정적 대립으로까지 확장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적 피해의식과 대국의 자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중국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들의 반응을 다면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옌롄커와 왕샤오보의 작품을 통해 서술되는 대약진 운동과 문혁의 영향은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다시는 약자였던 중국을 경험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낳았다. 이렇게 형성된 국가주의는 국가 이익 수호라는 구조 속에서 인접국 간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중국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부재한 채 혐오라는 감정의 영역에서만 머무른다면 갈등 해결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확장하면 오늘날 국제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유의미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예로 들면, 한 국가의 긴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공유한 동맹으로 여겨지던 중국, 러시아, 이란이 실제로는 이념 중심의 관계라기보다 이권이 교차하는 전략적 관계에 가깝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관념을 넘어, 다각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근현대사'는 중국 현대사의 정리를 넘어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한 축을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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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 2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