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세상이 규정되는 원리(4) 언론의 공정성
: 공정성을 반쪽만 추구하면 오히려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한다.
슈퍼맨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로이스 레인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바로 기자다. 제임스 건의 영화 ‘슈퍼맨(2025)’의 초반부에 두 사람은 크게 다툰다. 슈퍼맨이 가상의 약소국 ‘자한푸르’와 독재국가 ‘보라비아’ 사이의 전쟁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전쟁에 함부로 끼어들었다가 크게 다칠까 걱정되어 화를 낸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의 행동이 섣불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세게 비판한 것이다. 뼛속까지 기자다. 반면 슈퍼맨은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만 더 희생될 뿐이라며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이상하게도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이 연인의 다툼이었다. 악당 무리와의 액션 신이 아니라 애인과의 싸움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상한 구석이 있는 것은 전 세계 기자의 공통이었구나’ 그녀는 아무리 약소국을 침략하는 독재국가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으니 신중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가 미국으로 대표되는 만큼 국제 분쟁 개입 시 행동을 조심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재 국가 ‘보라비아’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녀는 아주 적절한 논리를 펼쳤다. 자한푸르든 미국과 보라비아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 했다. 남자친구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이해관계 문제도 적극적으로 배제했다. 진실에 집중하기 위해 공정하려 노력한 것이다.1)
하지만 슈퍼맨이 멍청해서 자기 몸을 희생까지 하며 전쟁에 뛰어들었을까?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마냥 고상하게 ‘가치’를 저울질하는 행위가 오히려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는 것이다. 웬만한 경우,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슈퍼맨이 본질에 충실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그녀가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행동은 큰 희생을 낳을 수 있는 판단이었다. 어떻게 포장하든 이 전쟁은 결국 보라비아의 침략이므로 두 국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행위는 오히려 공정하지 않다. 자한푸르 사람들만 위험에 빠뜨릴 뻔한 것이다. 그녀에게서 목격할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을 나는 ‘공정성에 매몰되었다’고 표현한다. 이는 실천적이지 않을 뿐더러 실천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다소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소개한 YTN 기사와 조선일보 기사를 되돌아보자. YTN은 정권이 교체되고 권력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칠 것 같아, ‘협치’라는 표현으로 상황을 당겼다. 갈등이 너무 심화되지 않고 빨리 아물 수 있도록 편향성을 견제한 것이다. 조선일보도 헌법재판소의 재판 결과에 대한 상반된 두 입장 모두를 공평하게 다루었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므로 균형을 유지하는 행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들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YTN과 조선일보도 특정 가치의 힘에 매몰되어 있다. 현실이 어떠하든 특정 가치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 가치란 여기서 협치와 중립을 말한다. 협치와 중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각에 따라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시점에 실질적인 해결책보다 고상하게 ‘협치’만 찾고 있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시각에 따라 헌정 질서의 운명이 걸린 판결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시점에조차 중립을 지키는 태도는 사실 그 자체로 편향적이고 극단적이므로 실망스러울 수 있다. 이 두 기사도 로이스 레인처럼 공정성 확보에 힘을 썼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여론을 이끈 것이다. 이런 반쪽짜리 공정성은 추구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이 문장을 상기하고 싶다.
“고상한 구석이 있는 것은 전 세계 기자의 공통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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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정성이란 일반적으로 어떠한 곳에도 치우치지 않고, 즉 공평하게 기회나 권리 따위를 분배하는 가치를 말한다. 이 글에서 특별한 언급이 없는 이상, 위의 통념적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