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1) ‘진보와 보수’에 대한 언어적 분석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습니까?
Q1. 진보는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을까?
A1. ___________________________
Q2. 우리나라는 왜 보수가 친일을 할까?
A2. ___________________________
Q3. 진보는 평등 보수는 자유라는데, 성소수자의 자유는 진보가 지킨다. 자유는 과연 보수의 것일까?
A3. ___________________________
Q4. 하는 만큼 받는 것은 사실 공정하지 않다. 도대체 왜?
A4. 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라도 궁금하다면 계속 읽어주세요!
: 앞으로 나아감
첫 번째, 언어적인 측면에서 진보와 보수를 분석해볼 수 있다. 진보는 말 그대로 전진의 ‘진’과 걸음을 의미하는 보행의 ‘보’가 합쳐진 단어로 ‘앞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기존의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새로움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것에서 문제점을 찾거나 보완하는 방식의 전개를 취하게 된다. 과거에서 결함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을 들여오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낯섦과 거부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자본주의는 진행되면 될수록 빈부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빈곤이 대물림되는 것처럼 부의 축적에도 가속도가 붙기 때문에 경제적 양극의 격차는 훨씬 벌어지게 되어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바로잡고자 시도하는 사람은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미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은 그들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데, 이들은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보수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또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변화는 기존의 것을 향유하고 있던 이들의 재산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등 기득권(이미 가지고 있던 권리)을 내려놓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거센 반발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진보는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거부감’이라는 첫 번째 숙명을 떠안게 된다.
: 진보의 첫 번째 숙명
‘거부감’을 감수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수용하려는 ‘그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도 모두 인간이기에 기존의 것이 편하고 새로운 것이 불편하겠지만, 때로는 몸이 거부하더라도 이성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관철하고자 하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대목에서 ‘배워야 진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안정 추구’를 거부하고 기어이 불편함을 견디는 행위는 새로운 에너지(배움)가 작용하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가만히 있는 물체를 움직이기 위해서 또 다른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물리 법칙’에 빗대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보수는 배우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 배우지 않아도 인간은 원래 보수적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 익숙한 것은 편하다. 심지어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보수는 본성에 가깝다. 그렇다고 진보를 더 우월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는 점을 중요시한다면 진보를 더 우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역사는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기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떠올릴 수 있다. 보수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를 열등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례하다.
: 진보의 두 번째 숙명
진보의 두 번째 숙명은 ‘위선’이다. 진보 진영의 정치인은 주로 아주 높은 수준의 도덕적 잣대를 통해 평가받는다. 이들이 스스로 인권, 평등, 자유, 공정 등 아주 높은 수준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본성에 반하는 불편함을 추구하는 일은 ‘아주 높은 수준’이라는 표현을 가질 자격이 있다. 또한 여러 기사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진보 진영에 특히 자주 붙는 것은 이러한 숙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보 진영 정치인은 부유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 또는 기득권 세력 청산을 위해 열심히 싸우던 정치인이 강남에 살고 있다면, 그것 자체로 위선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또는 대표적인 진보적 가치인 ‘여성 인권’을 위해 힘써온 진보 진영의 정치인이 성폭력 문제에 엮이면 그의 정치적 생명에 치명적 손상을 입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성폭력 문제와 같이 사안이 아주 중대한 경우는 정치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보수 진영의 정치인도 마땅한 처벌과 질타를 받지만, 이 경우조차도 진보적 숙명이 작동하여 상대적으로 진보 진영의 정치인이 보수 진영의 정치인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보수 진영은 평소 여성 인권을 포함한 다양한 인권 문제에 대해 진보 진영만큼 목소리를 강하게 내지 않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떠나 참작의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보수는 진보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 진영의 정치인은 이러한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는 도대체 무엇을 적극적으로 추구할까?
: 기존의 질서를 유지함
보수는 보호의 ‘지킬 보(保)’와 수비의 ‘지킬 수(守)’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이다. 말 그대로 무언가를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이다. 무언가를 지키려면 보호할 대상이 이미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보수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보수는 전통성, 자유와 같은 가치를 지향한다.
: 보수의 첫 번째 특성
우선 전통성은 이미 상기한 언어적 접근만으로도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쌓인 우리의 유산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수는 일반적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일 경우 국수주의(극단적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다. (‘-주의’에 전혀 겁먹을 필요 없다. 영어로는 ‘-ism’에 해당하며, ‘-주의’ 앞에 붙는 대상을 추구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주의란 민족을 추구한다는 뜻이고, 타민족보다 우리 민족을 우선하는 이념을 이르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논리’ 이전에 ‘상식’, ‘당연함’, ‘이치’와 같은 표현을 주로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면 진보 진영인 민주당이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보수 진영인 국민의힘이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의문점이 들 수 있다. 예컨대 반민족행위자 청산을 주도하고 지소미아를 파기한 정부는 진보주의 정부였다. 또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며 일본의 침략 행위조차 합리화시키는 ‘뉴라이트(New Right)’ 사관은 말 그대로 우파(Right Wing) 논리에 해당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해외 국가에서는 민족주의가 보수의 상징인데, 우리나라는 국제 표준과 조금 다른 것도 아니고 완전히 반대로 진보의 상징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한국 정치 입문의 문턱을 높이는 주요 원인
명쾌하게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진보 진영이 민족주의의 몫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보수가 지켜야 하는 기존의 질서가 조선 시대의 왕과 귀족에서 친일파로 넘어갔다는 ‘힘의 흐름’이 이를 뒷받침 한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보수의 핵심 척도인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는 과거 제국주의를 주도했던 서양 열강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정치적 기준과는 상반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의 정치 체계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완전히’라는 표현보다는 다소 ‘왜곡’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다. 외교 문제 중 일본 관련 사안이 정서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모든 사안에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사실 민주당은 일본에 한해서 민족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고, 일본과 무관한 외교 사안에서는 국민의힘이 주로 민족주의적 입장에 선다. 이 외에도 각 당이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론과 비슷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만큼 우리나라가 ‘완전히’ 잘못된 정치 체계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나라의 정치 체계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라는 표현에서 ’잘못되었다‘ 부분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서양의 기준과 일치하지 않으면 과연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서양과 차별되는 고유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서양의 기준에 억지로 끼워 맞출 이유는 없다. 우리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맞춤형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 더 고급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유성에만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된다. 해외의 표준을 들고와서 “LGBT 관련 발언을 쉽게 하지 못하는 민주당이 어떻게 진보 정당이냐”라고 지적하며 민주당을 보수 정당 또는 빅텐트 정당(이념에 상관없이 모인 정당)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지적에 해당한다. 비교하며 배울 것은 배우고 덜 것은 덜어야 바람직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제 표준에 우리가 꼭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비판은 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또한 우리나라의 보수가 서양의 보수와는 달리 일본에 관한 민족주의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는 만큼 진보와 보수가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자유
보수가 전통성을 추구하는 것은 이해가 돼도 ‘자유’라는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보수는 기존의 것을 지키는 사상인데, 기존에 내가 축적해온 자산, 내가 구축한 나의 네트워크, 내가 이뤄온 업적, 내가 가진 권리도 지켜야 할 것이다. 즉, ‘공공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권리’, ‘자유롭게 내가 벌어들인 소득을 내가 소유할 권리’, ‘내 자산을 내가 마음대로 운용할 권리’ 등 ‘자유로운 환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보수는 ‘자유’를 아주 중시할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의 자산이 50억 정도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50억은 몸이 부서지듯 온전히 내 능력으로 열심히 돈을 벌고 성공적으로 운용하여 이룬 자산인 것이다. 그런데 돈이 많다는 이유로 국가에서 세금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떼어가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가장 낮은 수준으로 세금을 떼어간다. 저들이 나만큼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즉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쏟아부으신 피 같은 돈, 내가 소득이 상당하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지기 위해 들인 비용, 시간, 눈물, 땀, 에너지, 그렇게 이룬 직업으로 힘들게 돈을 벌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산을 운용함으로써 비로소 이 높은 곳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노력도 하지 않은 저들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러한 당신에게는 평등보다는 자유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수가 자유를 지향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진보도 자유를 추구하지 않나? 아주 좋은 질문이다. 당연히 진보도 자유를 추구한다. 게다가 미국의 민주당은 자유주의 기틀 위에서 진보주의를 추구하는 일명 ‘리버럴(liberal)’ 정당이다. 사실 미국뿐만 아니라 웬만한 진보주의 정당은 자유의 가치를 중시한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보수는 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자유를 보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라면 과연 보수에 비해 자유를 경시한다고 할 수 있을까? 진보보다는 보수의 것인 줄 알았던 자유가 이제는 진보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해 헷갈릴 지경이다. 이처럼 자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가 잘 안될 때는 자유를 극단화해보면 된다. 즉, 자유를 절대적인 가치로 추구하는 극단주의 사상 ‘자유지상주의’가 진보의 사상인지 보수의 사상인지 따져보면 자유의 정체 또는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경제 영역에서의 자유지상주의는 보수인 반면 문화 영역에서의 자유지상주의는 진보이다. 경제 영역에서의 자유지상주의가 왜 보수인지는 위의 사례를 통해 이미 납득했을 것이다. 문화 영역에서의 자유지상주의는 성소수자의 자유권 보장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수는 자유, 진보는 평등’이란 식으로 간단하게 이해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보수를 설명할 때 자유를 강조한 이유는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보수는 자유, 진보는 평등’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혀 있기도 하며, 강한 인식이 자리 잡힌 데는 나름의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나름의 타당성이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경제’가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웬만큼 특이한 상황이 아닌 이상 선거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가 민생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 분야에서 자유를 쉽게 체감할 수 있고, 가볍게 말할 땐 보수에게 자유를 양보하는 편이 편한 것이다.
: '운'을 고려하면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판타지
'자유'에서 다시 돌아와, 위에서 가정한 50억 자산의 당신이 가지는 생각은 전형적인 ‘능력주의’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능력주의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얻는 것이, 즉 본인이 한 만큼 얻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능력주의에 큰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만 들어보면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옳은 말처럼 들린다는 것이 너무나도 위험한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내가 이룬 성취들이 과연 나 혼자 할 수 있었던 것일까?’라는 질문이 꼭 필요한데, 나의 성취는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내가 운이 좋게도 북반구의 대한민국에 태어나서’(조금만 위로 갔으면 불행했을 것이다), ‘내가 운이 좋게도 21세기에 태어나서’, ‘내가 운이 좋게도 넉넉한 우리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서(대한민국 안에서도 중산층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적어도 혼자서는 생산할 수 없는 많은 물질을 타인과의 거래로 얻을 수 있는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온전히 본인의 노력만으로 성취를 이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이처럼 '운'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능력주의는 사유하지 않는 엘리트가 본인의 노력을 정당화하는 '오만한' 논리에 주로 이용되곤 한다. 책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센델 교수도 능력주의의 이러한 치명적 결함을 비판했다.
“조던은 뛰어난 농구 재능이라는 행운을 타고났으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공을 링 안에 꽂아 넣는 능력을 포상해 주는 사회에 사는 행운도 가졌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기술을 연마했다 하더라도, 타고난 재능의 덕을 입었다는 사실과 농구가 인기 스포츠여서 농구만 잘하면 푸짐한 포상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행운조차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는 조던이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센델, 1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