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진보와 보수‘ 개념이 어려운 이유

아주 추상적인 만큼 복잡한 세상을 쉽게 포섭하는 기준

by 승현

문제1 ※ 문제 이해가 어렵다면 본문을 먼저 읽어도 괜찮습니다.


아래의 1번은 ‘시장에 대한 가치관’이, 2번은 ‘여성 인권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의 입장을 나누는 기준이다. 하지만 1번과 2번을 동시에 나누는 ‘공통된 기준’이 존재한다. 나아가 1번과 2번의 관계를 넘어, 1번부터 40번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기준도 존재한다. 다음 40가지의 논제를 관통하는 ‘공통된 기준’을 찾으시오.


1) 큰 정부를 지지한다 vs 작은 정부를 지지한다

2)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vs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

3) 사형제도에 찬성한다 vs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4) 성소수자를 존중한다 vs 성소수자를 존중하지 않는다

5) 코로나 백신 강제 접종에 찬성한다 vs 코로나 백신 강제 접종에 반대한다

7)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 vs 상속세를 강화해야 한다

8) 부동산을 주거의 목적이 아닌 금융 자산으로서 투자하는 행위는 제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vs 부동산을 주거의 목적이 아닌 금융 자산으로서 투자하는 행위는 규제하면 안 된다

9)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과하다 vs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10) 청소년 스마트폰 이용의 법적 제한에 찬성한다 vs 반대한다

11) 동물권 보장을 위한 채식주의를 존중한다 vs 이해할 수 없다

12)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 vs 낙태는 불법으로서 규제해야 한다

13)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에 찬성한다 vs 반대한다

14) 횡재세 도입에 찬성한다 vs 반대한다

15) 인생은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 vs 가능한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

16) 대북 정책은 유화적이어야 한다 vs 대북 정책은 강경해야 한다

17) 수시 축소 및 정시 확대에 찬성한다 vs 반대한다

18) 탈원전에 찬성한다 vs 원전 가동 현상 유지 또는 확대에 찬성한다

19) 대마초 등의 마약을 합법화 해야한다 vs 해서는 안 된다

20) 도박은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vs 도박을 합법화 해야한다

21)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 vs 안락사를 허용해선 안 된다

22) 현시점 흡연자에 대한 처우가 너무 가혹하다 vs 흡연자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23) 음란물 사이트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이해할 수 없다 vs 해당 규제는 필요한 조치이다

24)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은 부당하다 vs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은 정당하다

25) 독일처럼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과 상관없이 본인 성별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해야 한다 vs 생물학적 성별에 충실해야 한다

26) 난민 수용에 찬성한다 vs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

27) 대형마트 의무휴업제에 찬성한다 vs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를 반대한다

28) 개고기 식문화를 반대한다 vs 문화로서 존중한다

29) 우리나라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vs 이는 터무니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30) 중대범죄자의 신상 공개에 찬성한다 vs 중대범죄자의 산상 공개를 반대한다

31) 돈이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vs 돈이 많다고 해서 그들만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32) 현시점 우리나라 군대는 당나라 군대이다 vs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개선되고 있다

33) 코로나 확산 초반, 확진자 동선 공개는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vs 공익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다

34) 박정희 대통령은 과보다 공이 크다 vs 공보다 과가 크다

35) 햇볕정책은 바람직한 정책이었다 vs 올바르지 않은 정책이었다

36) 미국은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훌륭한 국가이다 vs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바쁜 개별 국가 중 하나일 뿐이다

37) 미군 철수는 해도 된다 vs 미군 철수를 해선 안 된다

38) 유능한 독재자도 독재자일 뿐이다 vs 독재자라도 유능하다면 지지할 수 있다

39) 학벌주의는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vs 학벌주의는 타파해야 마땅하다

40) 빈곤과 무지는 노력 부족의 결과이다 vs 노력 부족에만 탓을 돌릴 순 없다


정답란: __________



진보와 보수

: 세상을 양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준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대립 관계를 한 번에 반으로 가를 수 있는 공통된 기준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예를 들어 ‘자유권’이라는 공통된 기준으로 4번(성소수자), 21번(안락사), 25(성별자기결정권)번의 대립 관계를 한 번에 양분할 순 있어도, 17번(정시확대)의 대립 관계를 ‘자유권’을 기준으로 나누기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아가 세상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상기한 40개의 대립 관계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대립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40개 속에서 일관된 하나의 기준을 찾는 것도 어려운데, 세상의 무한한 경우를 양분하는 기준을 찾는 것은 불가능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대립 관계를 단 하나의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 ‘진보와 보수’이다.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논제에는 기존의 질서를 중시하는 입장(보수)과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입장(진보)이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4번의 성소수자 문제에서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입장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진보적 견해에 해당할 것이고, 성소수자를 지지하지 않는 경우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적 견해에 해당할 것이다. 21번 또한 안락사를 지지하는 입장이 진보,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 보수일 것이며, 25번도 성별을 직접 정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입장이 진보,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 보수일 것이다. 심지어 17번에서도 기존에 중시해온 전통적 사고력만을 시험하는 정시 확대가 보수, 전형적인 사고력뿐만 아니라 지구력, 성실성, 끈기 등의 다양한 영역을 평가할 수 있는 수시의 확대를 지지하면 진보일 것이다. 이처럼 ‘자유권’이라는 기준으로는 묶지 못했던 네 개의 대립 관계를 ‘진보와 보수’라는 기준으로는 일관되게 양분할 수 있다. 이 네 가지의 대립 관계뿐만 아니라 이외의 40개 또한 ‘진보와 보수’라는 기준만으로 일관되게 양분할 수 있다. 이에 더해 40개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진보와 보수가 뭐길래 세상을 양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추상성이 만들어낸 거대한 포섭력

: 포섭력을 확보하기 위해 명확성을 지불하다


눈치를 챘겠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기준은 ‘자유권’이라는 개념에 비해 훨씬 추상적이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경우를 포섭할 수 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는 대단한 포섭력을 얻은 만큼 개념의 명확성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반대로 ‘자유권’은 구체적인 만큼 더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고 할 때마다 우리를 방해했던 이 개념의 까다로움이 ‘포섭력과 명확성의 교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그 이야기로 정치 게시물을 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진보와 보수로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개념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유감스럽게도 먼저 정치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보다 ‘정치’가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분들은 너무 많지만, 진보와 보수를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꽤 신박하게 느껴졌다면 정치를 다음과 같은 시각으로 설명하는 것 또한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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