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자유민주주의는 틀렸다.

by 승현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진영의 소유물이 아니고, 모든 사상이든 자유민주주의의 기틀 위에 존재할 뿐이며, 나치즘과 공산주의조차도 그 위에 존재한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는 무엇일까? 공산주의일까? 사회주의?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조합한 단어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그 개인들, 즉 모든 국민이 동시에 자기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다른 생각을 가질 자유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그 다른 생각에는 당연히 공산주의적 이념도 포함된다. 거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은 감정을 모두 빼두고 논리로만 따져보자.


어떤 사상을 위험하거나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통제한다면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극단주의적 진보주의에 해당하는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극단주의적 보수주의 이념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극단주의적 보수주의는 흔히 극우로 불린다. 극우는 서양에서 나치즘으로 대표되며, 반이민주의나 인종주의를 포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제국의 한반도 침략을 합리화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표적이며, 혐중 정서나 반공주의를 포함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따르면 이들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불편한 입장들도 존중하라니. 정말 어려운 요청이다. 이걸 굳이 힘들게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얼마큼 대단한 사상이길래 21세기의 주류 체제로 자리매김한 것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는 국가의 붕괴를 예방해준다. 이는 다양성을 신봉하는 체제인 만큼 예기치 못한 재앙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품종이 하나뿐인 바나나를 떠올려 보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바나나는 모두 동일한 유전자 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 조성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확산된다면, 바나나는 곧 멸종할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국가의 붕괴를 예방한다는 논리는 이와 비슷하다. 아무래도 국민의 생각이 다양하지 않은, 나아가 획일적인 국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변수들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이처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짓밟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는 공동체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끈다. 하나의 입장은 결코 완전무결할 수 없다. 일상에서 싸움을 중재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말만 듣다 보면 그것이 완전히 맞는 것 같지만, 막상 반대측이나 다른 이들의 입장을 파악하다 보면 이들에게서도 일정 수준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마련이다. 각자 다른 사정을 품은 이들은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이를 두고서 진리의 조각이 흩어져있다고 표현했다.


이 진리를 맞춰보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입장을 솔직하면서도 부드럽게 주고받아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모든 의견이 자유롭게 오고 갈 때, 즉 서로의 가치를 조합할 때, 최대한 많은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동체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방안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해당 공동체에 가장 적절한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방안을 말이다. 그렇게 공동체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간다.


자유민주주의의 이 두 가지 장점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인류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봐도 충분히 쉽게 알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집단은 고립되거나 후퇴하여 자연히 탈락했고, 서로 다른 세력이 부침을 반복한 국가는 살아남아 발전했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지금의 미국도 이미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서로 다른 민족과 인종이 모여 만들어진 미국이 압도적인 패권국이 되었고, 그 안에서도 최고 수준의 다양성을 자부하는 서부의 캘리포니아가 특히 발전했다. 불편함을 참을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나치즘과 공산주의마저 존중하라는 말은 정말 쉽지 않다. 거북하다. 그렇다. 이념은 이념일 뿐이다. 현실과 이념은 분명 다르다. 그러므로 이 괴리를 줄여야 현실에서 이념을 조화롭게 적용할 수 있다. 극단주의 사상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폭력적인 경향이 있다. 어떤 계기로 극단주의 세력이 커진다면, 국가를 전복할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따라서 현실의 칼로 이념을 다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나치 관련 발언 또는 행동을 법적으로 처벌한다. 이는 자유주의에 따르면 존중받아야 마땅한 생각 하나를 공권력으로 억압하는 조치인 것이다. 그러나 나치즘으로 인해 대략 600만 명의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전범 딱지를 떼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의 역사를 떠올려 보자. 독일인 대부분은 앞으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제도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했던 것이다. 나치즘이라는 한 사상을 국가 권력으로 통제하는 방안은 이 결과였다.


이에 대해서 아주 잘못된 법률이라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시행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일들과 비용에 비해 시행했을 때 누릴 수 있는 효용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자유주의가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다양한 맥락에 따라 수정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공산주의 국가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장 공산주의 이념을 존중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는 합리적이다. 우리나라만의 사정이 있으니 자유주의도 우리나라만의 방식으로 정착되어야 마땅하다.



자유민주주의는 분명 매력적이다. 이제 충분히 알겠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는 이 고민을 해보기 전까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대립 관계로 오해했었다. 대체 왜 우리는 이 둘을 오해했던 것일까?


냉전 시기 소련과 미국의 대결은 곧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으로 인식되었고, 우리는 이 관념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냉전이 끝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이로부터 자유롭긴 어렵다. 특히 북한과 맞서고 있는 우리나라는 냉전의 여파에서 더욱 자유롭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오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는 무엇일까? 국민 전체가 국가의 주인이 되지 않고, 단 한 명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경우일 것이다. 이를 독재라고 한다. 한 명이 아니더라도 소수가 권력을 쥐고 국가를 주도하는 형태라면 이 또한 자유민주주의와 거의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가 주로 공산당, 즉 소수가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현실화되었다는 점에서도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오해할 만하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의 국민에게는 공산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요구되었다. 이처럼 획일적인 생각만이 강제되었다는 점에서도 자유주의에 반하므로 오해할 만했다.



이때 우리나라로 눈을 한번 돌려 보자.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 정치인들의 행동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에 부합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유의미하지 않을까?


2022년 11월 15일 TBS 교통방송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을 중단하는 조례안이 통과되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이를 두고서 “지난 몇 년 동안 TBS는 특정 정파를 위한 유튜브 방송 같은 느낌이 강했고, 공영방송의 공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발언했다.1) TBS에서 6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2월 30일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 김어준 씨는 하차했다.


무려 5년 동안 20분기 연속 라디오 청취율 조사 1등을 달성했던 프로그램이었다.2) 이는 TBS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오 시장은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방송국의 돈 줄을 움켜쥐었으며, 간판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퇴출시켰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말해왔다. 자유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보수 진영의 가치처럼 여겨져 왔으므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태도와 발언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TBS에 대한 그의 행동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여느 보수 진영의 정치인들과 다르지 않게 자유민주주의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가 탄핵을 당하게 된 계기였던 12.3 계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란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결심 공판 중 최후 진술에서도 6번이나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했고,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반국가세력의 위험성을 국민께 알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본인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정치인들을 제거하려 했던 시도가 과연 자유민주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하겠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윤 전 대통령의 생각은 냉전 당시의 관념에서 바라보면 유효할지 모른다. 미국과 일본 등 자유주의와 친한 본인과 때로 반미와 종북으로 몰리는 진보 진영이라는 구도를 생각해보면 그의 생각이 이해가 되긴 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그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를 신봉하고 있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만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통념을 뒤집어 봤다. 이제는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현실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왜 우리가 오해하게 되었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잘 안다. 이는 간단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진영의 소유물이 아니고, 모든 진영은 자유민주주의의 기틀 위에 존재할 뿐이며, 나치즘과 공산주의조차도 그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1) 조선일보, <오세훈 "TBS, 특정 정파 유튜브같아… 공정성 되찾으면 얼마든 지원">, 2022.12.27.

2) 한국기자협회, <손석희에겐 있고 김어준에겐 없는 것>,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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