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다

"맞는 것 같아요."

by 그때그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벌써 20여년 전. 윗 세대들은 나를 '요즘 애들'로 불렀다. 당시 나는 독립적이고 개성을 중요시한다던, 반항의 상징 'X세대'에 속했다. 흔히 세대를 구분하는 출생년도 범위에 포함된 나이여서 일단 'X세대 프레임'에 넣고 보는 분위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바르고 성실하게 보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쉽게 하지 말라고 배웠다. 세 살 위의 사수는, 너의 잘못이 100%가 아닌 이상 '착각했습니다',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등으로 바꿔 말 하라고 가르쳐주었다. 상사들은 꼰대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뱉는 순간, 전부 너만의 '죄'로 여기고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보통 조직에서는 온전히 누구 한 명의 잘못으로 생기는 일이 없으며, 설령 그렇다해도 그 책임을 나누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조직이랬다.


"그 건은 김과장님이 말씀하신 방법으로 알아본 데이터인데요.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일 수 있으니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분명 무언가 실수를 했는데, 내 잘못만은 아닐 수도 있고, 결국 '아직은' '죄송'하진 않다는 뜻이 된다. 신입에게 책임은 너무 무겁고 두려운 일이다.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익혔던 이 화법은 효과가 좋았다. 자존감이 지켜지는 느낌이었다. X세대 치고(?) 책임감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책임을 피하려고 배운 말인데 책임감이 있고 일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아이러니.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에 잘못한 일에 죄송해도 늦지않다. 그 선배는 말로 자신을 낮추기 전에 팩트체크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었나 이제와 생각해 본다.


책임을 피하고 싶은 젊은 것들 이야기가 아니다. 말버릇에 대한 이야기다.


"제가 잘못 본 것 같아요. 죄송해요."

"처음엔 이거 같았는데, 팀장님이 말씀하시니까 아닌 거 같아요."


혹시 예의 바르게 들리시는가.

잘못 봤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처음에 제대로 확인한 것은 맞는지. 팀장이 틀렸다는 건지 본인이 잘못이라는 건지. 그 자리에 본인이 있었던 건 맞는지.


어미에 '같다'가 붙으면 본질이 모호해지고 문제가 흐려진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니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런 것 같은', 즉, 아닐 수도 있는 것에 뽀족한 수가 나올리 만무하다. 중요한 내용은 모조리 애매하게 말해 놓고 마무리는 죄송하다니. 예의 바른게 아니라 핵심은 파악하지 못한 채 상황을 모면하려다 본인이 잘못을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회피형 말버릇이다.


'같다'는 '동등하다', '유사하다'의 의미로 쓰이지만 '똑같다'는 아니다.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담고 있다.

'앵두같은 입술'은, 입술이 촉촉하고 붉은 빛을 가져 앵두와 비교하니 다름없다는 뜻이다.

'한정식집 같은 식당'처럼 그런 부류에 속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빗대어 형용함으로써 풍성한 표현이 되지만 사실 관계를 설명할 때는 피해야하는 단어가 '같다'다.


일상에서도 생각보다 자주 쓴다.


"나한테는 좀 단 것 같은데."

"이제 가봐야할 것 같아."


불확실한 단정이다. 자신의 의견에 확신이 없어 보이지않나. 직접적으로 의견을 말할 때 받을 비판이 싫어서 애둘러 의견을 전하는 것일테다. 자기의 생각을 말 하고 있는데 왜 불확실함을 전제로 하는 것일까?


상대방을 배려해서 간접적인 표현을 한 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아마도 상대의 기분을 고려해 공손하게 한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 예우라고 여겨왔기 때문일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특히 윗사람 앞에서는 더욱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며 눈초리를 받아왔기 때문일 수 있겠다. 배려하는 마음을 담아 공손하게 말하는 것은 상대가 누구냐에 관계없이 필요한 태도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필요도 있다. 배려하는 말도,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전하는 말도 다 필요하다.


"제가 잘못 이해했습니다. 다시 확인할게요."

"나한테는 좀 달아. 더 안줘도 돼."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본인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길 바란다. 그것이 상대와 다른 의견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일지라도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무례가 아니다. 버릇없고 자기 주장만 하는 '요즘 것들'이라서는 더욱 아니다.

그저 간접적 화법이 공손으로 포장된 말버릇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거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