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원래 그래요."

by 그때그대

"원래 그래요."

"저희는 원래 그렇게 했어요."


'원래'가 원래 나쁜 의미가 아닌데 나에게 참 불편함을 주는 단어다. 사전을 보면 한자어 '근원'과 '오다'의 의미가 합하여진 '사물이 전하여 내려온 처음'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렇다. 사물에 붙이는 말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원래의 가격보다 싸군요."

라는 표현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원래'가 사람이나 생각, 문화 혹은 습관 등에 붙으면 몹시 거슬리게 된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말하면, 그 사람의 근본적인 성격을 단정짓는 표현이 되고, 이것은 그동안 쌓아온 정보에 의한 제한적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도 같다. 나는 애당초, 본래, '이런' 사람이니 반대하지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압박이 담겨있다.

둘 다 관계를 닫아버리는 말이지 않나.

나에게는 거의 "닥쳐"와 같은 급으로 들린다.


나는 프리랜서 기획자로, 제안서를 쓰고 피칭을 하는 역할을 한다. 클라이언트는 나에게 요구사항이 담긴 문서를 주고 목적에 맞게 제안서 작성을 요청한다. 그럼 나는 클라이언트의 장점을 분석하고 그들이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당 분야의 트렌드를 빠르게 이해한 다음 문서 작업을 한다. 갑을관계에서 나는 병도 아니고 정쯤 되겠다. 시키는대로 해야하는 레벨이라 생각하는가. 글쎄, 나는 누구와 일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에게 의뢰를 했으나 단순 문서정리 수준의 업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니까. 나의 경험을 활용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내고 싶어 나를 찾은 것이니까. 나는 내 생각을 충분히 담고 때로는 논쟁을 할 의무가 있다.

짧은 시간 안에 그 업계의 트렌드를 파악해야 하고 클라이언트의 역할도 이해해야해서 종종 부침이 있다. 당연한 일이고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날은 문서 마무리 단계에서 클라이언트 측 임원과 언쟁이 있었다. 그는 문서 일부를 추가하고 싶어했다. 두 시간 만에 수정해줬다. 그는 5장 추가를 원했지만 나는 3장을 추가해 메일로 보냈다. 곧바로 전화가 왔다.


"왜 3장만 추가했나요. 5장 하라고 했잖아요."

"장 수가 중요한가요. 말씀하신 내용은 다 들어갔어요."

"그래도 왜 시키는대로 하지않죠?"


여기서 조금 불편했지만, 차분히 설득하려고 애썼다.

문서는 특히 피티를 해야하는 문서는 흐름이 중요하다. 그가 추가를 원했던 내용은 주요 내용이 아니고 업계 트렌드에 대한 부가 설명이다. 여기가 길어지면 핵심 내용이 무게감을 잃고, 피티 시나리오를 짜보니 늘어지는 지점이더라.(시간제한이 있는 피티다.) 그 부분을 길게 가져가야하는 귀사의 이유가 있는 것인지 재차 물었고, 아니지만 추가하란다. 무슨 뜻이지. 모르겠지만 알겠다. 원하는대로 5장 추가하겠지만 스피치할 때는 빠르게 짚고 넘어가야겠다. 했다.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하셨으니까.


"쫌!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혼잣말인가? 아니지. 내게 들렸으니 혼잣말은 아니잖아.


"왜 이렇게 화가 나셨죠? 문서가 문제이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어요. 그럼 저를 설득하셔야죠."


실은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그 임원은 약간 흥분한 톤이었고 대화를 이어갈 수록 격앙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 분위기에 휘말리지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붙들고 있었다. 마지막에 그가 혼잣말인지 들으라고 한 말인지를 툭 던졌을 때는 나도 몹시 기분이 나빠서 ‘이막물’ 톤이었음을 밝힌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좀 그랬죠. 그런 뜻은 아니에요. 그렇게 들렸다면 아 정말 미안해요. 내가...아 내가...경상도 사람이라 그래요. 내가 원래 좀 그래요. 경상도 사람이 원래 그렇잖아. 무뚝뚝하고 거칠고..."


그런 뜻? 무슨 뜻? 그렇게 들려? 뭐가 그렇게?

어떻게 통화를 마무리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않는다.

'내가 원래 좀 그래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솔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경상도 사람이 어디 원래 그러나. 내 남편이 경상도 사람이고 가족과 친구들도 수두룩인데 안 그렇던데.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닐테고, '원래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 사람은 더욱 아닐거다. 단지 과하게 흥분한 모습을 들킨 것을 감추고자 했던 말이다. 그러니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방어적인 사람'인 거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굳이 외부인력을 써서 제안서를 맡기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대표가 본인을 불신하는 것으로 여겼고, 그 불만을 대표에게 직접 쏟아내기 어려우니 나에게 향한 것이다.

불신, 불안, 불만이 본인을 가두어버렸나보다.


인간관계에서 단편적 정보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경계해야한다.

그러니 '원래 그래요' 라는 말로 본인 혹은 환경의 변화를 막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하자.

또한 나 스스로도 '나는 원래'라는 말 안에 나를 가두지 말자.


우리는 모두 원래 다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