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육아

by 그때그대

주제를 정해두고 서두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 사진첩을 열었다. 3년 전 핸드폰을 바꾸어 고작 그만큼 어린 아이들이 웃고 있다. 그 웃음이 해맑고, 만지지 않아도 어린 살결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이렇게도 금방 큰다. 아이들은.


나에게도 독박육아를 하던 때가 있었다. 아니, 없었다.

독박육아는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배우자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오로지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은 귀가가 늦는 날이 많았고, 양가 어머니들이 가까이 계신 것도 아니라 홀로 아이들을 키워 낸 날이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독박육아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니 없었다고 말하겠다.


아이들 아빠는 대체로 일로 늦었고, 때로 개인 시간을 보내느라 늦기도 했지만 늘 집을 궁금해했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었는지, 투정 부리지는 않았는지, 투정을 부려서 내가 힘들지는 않았는지를 물었다. 나에게는 그 안부 전화가 육아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잊게 했다. 함께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의식적으로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도 맞다. 독박육아라는 말이 싫었으니까. '독박'이라는 단어는 혼자서 바가지를 뒤집어 쓰거나 감당한다는 의미다.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그렇다해도, 바가지 뒤집어 쓰고 몰매를 맞는 듯한 장면이 연상되는 느낌이 싫다. '독박 쓴다'는 말은 모든 책임이나 불이익을 혼자 떠안는 상황을 의미한다. 더구나 판돈이 백원이든 판돈 없이 재미로 하는 것이든, 화투패를 돌리며 어쩐지 태도가 불량해지던 도박놀이를 할 때 배운 단어를 육아에 붙이는 게 가장 싫다. 사정이 있어 홀로 육아를 하는 시간일 뿐, 어려움을 혼자 뒤집어 쓴 것은 아니오, 억울한 일도 아니고, 벌칙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다.


혼자 육아하는 날이 길어지면 힘들다. 체력이 달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밤만 되면 우울감이 느껴져 눈물도 난다. 남편은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며 잘 나가는데 나는 집에서 머리도 못 감고 시사에는 무심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싶다. 육아휴직을 했지만 복직을 앞두고 퇴직통보를 받은 나는 이제 어느 조직으로든 사회생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대화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아이가 이유식을 싹싹 다 먹어서 내가 요리를 잘 했나봐 칭찬받고 싶은데 말 할 사람이 없다. 아이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더니 아이가 윙크를 해줬다. 어쩌다 찡그린 표정을 윙크라고 마음대로 해석하고는 혼자서 호들갑을 떨 뿐이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왜 밥 먹을 시간이 없는 건지 어린 아이를 혼자 키워본 사람은 안다.


그렇다고 독박은 아니다. 하루가 얼마나 짧고 아이는 또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그것도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그 귀한 시간을 바가지를 뒤집어 쓰고 웅크린 모습으로 나 자신을 비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내가 짐인가, 내가 엄마를(아빠를) 힘들게 하는 존재인가, 말 못하는 아이들도 다 안다고 하더라. 그리고 배우자들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혼자라는 기분을 훨씬 덜어준 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물론 모두 사정이 다르고 내가 극한의 육아를 경험해 보지 않아서 쉽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독박이라는 말로 본인과 아이의 소중한 시간을, 불이익을 떠안은 상황에 비유하지 말자.


어느덧 십대가 된 두 아이들을 보니, 온종일 붙어서 부비고 뒹굴던 그 시간이 몹시 그립다.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