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

"장손 왔나."

by 그때그대

내가 장손을 낳았다. 시부는 갓난 아기를 보자마자 "아이고, 우리 장손." 하고 인사 하셨다. 그 장손이 자라 이제 열 살이 되었는데, 당신의 인사는 항상 "장손 왔나."로 시작한다. 몇 달 전 부산에서 시가 친척 결혼식이 있었는데 남편과 아들만 참석했었다. 시부는 하객으로 모인 일가 친척에게 '서울에서 온 장손'이라며 아이를 여기저기 인사 시켰다 한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용돈을 엄청 받아와 약간 상기된 기분으로 치킨을 쏘았다.


아이는 장손의 의미를 잘 모른다. 본인은 위로 누나가 있는데 어째서 자기에게 '길 장' 한자가 붙어 ‘맏이’의 뜻을 가진 '장손'이 되는지 그 진짜 의미를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한번 궁금해 하길래, 예로부터 남자가 집안의 대를 잇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자 손주 중에 가장 맏이라는 의미로 장손이라 부른다고 이야기해줬다. 그렇구나. 현대 시대에 와서는, 하고 블라블라 더 이야기 해주고 싶었지만 아이가 더 이상 궁금해 하는 것 같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다. 이해를 해서가 아니었다.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보였다.

본인이 장손이라는 것은 아빠도 장손이라는 뜻이고, 그를 장손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도 장손이라는 것인데, 아이는 장손의 그 무거운 책임과 역할을 보아온 바가 없다.


장손은 전통적으로 가문의 중요한 일에 중심이 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집안의 중요한 의사결정부터 대소사까지 장손이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한다. 그야말로 그 집안의 '가장 큰 어른' 이기에 권한이 컸고 책임도 무거웠다. 특히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제사를 주도하며 후손에게 '대를 잇는' 솔선이 중요하다.

나의 아버지는 오남일녀 중 삼남이신데, 큰 형님에게 늘 깍듯하다. 큰아버지께서도 집안의 장손으로서 언제나 본을 보이려 노력하셨다. 철없던 시절 내가 본 장손은 어렵고 힘든 역할 같았다.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닐텐데 어째서 저렇게 동생들을 두루 살피고, 돌아가신 조상에겐 정성을 다하는 것인지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제사가 특히 그렇다. 내가 직접 보는 장손의 가장 큰 애로는 제사다. 진짜로 조상님들이 식사하러 오시는 것인지 믿을 수 없지만 집안의 법도에 따라 상을 차리고, 시간을 기다리고, 한 겨울에도 문을 빼꼼 열어둔 채 행하는 일. 어린 나는 자다깨서 눈을 비비고 양말을 챙겨 신은 후에 맨 뒷 줄에서 절을 했다.

지금은 일 년에 한번으로 간소해지긴 했지만 친정 어른들의 제사는 항렬이 바뀌어 사촌 큰 오라버니 몫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제사상이 돌아가신 분들의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의 두번째 저녁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큰 상에 둘어 앉아 사는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평소 잘 안 먹던 반찬도 왕할아버지가 권하면 한번쯤 먹어보는 경험도 하고 말이다. 제사 상차림은 힘들어도 그렇게 가풍이란 것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것이라고 느낀다.


장손이 뭐길래. 어머니는 내가 장손에게 시집을 간다고 내심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정작 나는 크게 염두하지 않았다. 당시 남자친구인 지금의 남편이 종교를 이유로 그리고 조모님의 유언으로 제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집의 가풍은 내가 새롭게 배워가면 되지.


시부는 장손이시지만 형제 간에 의절하여 왕래가 없다. 명절에도 큰 상을 꺼낼만한 만남이 없으니 집안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시모를 통해 들은 것이 전부인데 그것은 보통 며느리 시점이라 치우침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남편도 장손이지만 이미 아버님 대에서 끊긴 그 무엇 때문인지 큰 아들, 딱 그 정도요, 장손의 느낌은 아니다. 근사한 집안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을텐데 여태 별로 들은 바가 없다.


농사 지어 글을 가르친 집안에서 내가 태어났으니 성실할 수 밖에.

나는 할머니의 기개를 닮았나보군.

내가 아무개 조상님의 후예이니 나한테도 용기가 있을거야. 포기하지말자.

이런 생각하면서 나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던 청소년 시절이 내겐 있었다.

시아버지가 작은 아이에게 "아이고 우리 장손." 하실 때마다, 시어머니는 핀잔을 주신다.

"우리 죽어도 얘한테 제사 지내달라 할 것도 아니고, 남자 아이가 또 있는 것도 아닌데 장손은 무슨. 그냥 이름 불러주이소. 다정하게. 아 부담주지 말고."

부담이 담긴 것이었나. 단지 장손이 팩트라서 호칭으로 쓰시는 게 아니고?

문득 신경이 쓰인다. 정말 뜻이 있는 것이라면 가르쳐 주시면 좋겠다. 제사를 안 지내도 배울 것은 있지 않겠나. 대대손손 이어지길 바라는 집안의 철학이라던가 가훈 같은 것. 혹은 바라는 것이 있으실 수도 있겠고. 장손에게 바라는 책임과 역할이 있다면 알려주시라. 책임이 있으면 권리도 있을텐데 그것도 주시라. 어쩌면 그 권리로 줄 것이 없어서 말씀을 안 하시는 건가. 아니라면 시부께서는 그 책임이 너무 힘들어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것 저것 다 아니라면 시모님 말씀대로 이름을 불러주시라. 할아버지가 손주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는 이름 불러주실 때 더 크게 전해질 것이다.


장손으로 태어나 장손을 낳은 남편은 아버지의 사랑이 고팠던 것 같다. 시부는 정작 아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대를 건너 '손'에게 쏟아지는 시부의 애정은 아들을 그토록 사랑하지 못한 미안함도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본인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다. 아버지가 되어보니 더욱 섭섭한 나의 아버지라나.

남편과 나는 우리가 새롭게 가풍을 만들기로 했다. '손'까지 내려갈 것 없다. 아들 딸 하나씩이니 '장손'도 없다. 그저 나의 아이들을 사랑하여 있는 그대로의 좋은 본이 되기로 하자. 아이들이 자라 그이들만의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는다면 자기 아이들에게 다시 사랑을 주면 된다. 우리의 노후는 우리가 알아서 잘 살자. 제사도 싫다. 우리에게 생긴 '손'. 그 벅찬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안되지만 그 때가 되어도 내 새끼부터 걱정하고 많이 사랑하자. 나의 안위를 조상에게 바라지 말고, 자손에게 내 미래를 의지하지도 말자. 그렇게 사랑을 미루지말고 지금 표현하는 것을 우리집 문화로 하자.

장손은 없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