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

"잠재력을 키워드립니다."

by 그때그대

마흔이 넘으면 나는 뭐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스무살의 내가 생각했을 때 말이다. 뭐가 되긴 되었지.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었으니까. 요즘은 사춘기 아이와 서로의 꿈에 대해서 대화한다. 엄마가 지금 네 나이였을 때는 무엇을 하고 싶었나, 나는 어떻게 흘러흘러 지금의 나가 되었나를 이야기했다.

아이는 롤모델을 바꿔가며 어른이 될 자신을 그려나가는 중이다. 뭐든 할 수 있는 열두살의 아이가 부럽다. 정작 본인은 무엇도 못 할까봐 걱정많은 소녀이지만.


작은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연필 쥘 힘이 있을 때 부터 내가 집에서 일을 하느라 식탁에 노트북을 열고 앉아 있으면, 마주 앉아 A4 종이에 뭐라도 끄적이곤 했다. 그림 그릴 때 꽤나 진지하고 집중을 잘 해 일에 방해가 되지 않고 좋았다. 거침없이 그려나가는 스타일이 좋았다.

외출을 할 때는 항상 작은 노트와 필기구를 가지고 나간다. 갑자기 생각나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서다. 주로 건물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건물을 그려두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동물도 그리고 행인도 그린다. 내 마음에 쏙 들어 완성되면 벽에 붙여두어야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림 속 건물 3층에 불이 나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행인들이 사진을 찍는다. 아이는 빨간색 색연필로 바꿔 쥐더니 불길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그려넣었다. 검은 연기도 점점 넓게 표현된다. 전시는 망했다. 아, 아쉽다.


이 아이가 크면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최웅처럼 되려나 생각해봤다. 최웅을 연기한 최우식 배우의 순하고 훈훈한 외모로 자라도 좋겠다고 상상했다. 드라마 속 최웅 캐릭터는 움직이지 않는 건물과 나무만 그리며, 자유롭게 자기만의 인생철학으로 유유자적 살아가는 인물이다. 난 아이가 바쁜 세상살이에 치이지 않고 여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한 것이다. 물론 극중에서도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내가 아이들의 미래를 영화나 드라마에 빗대어 상상하는 이유는 능력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고, 성향도 잘 알고 있지만 무엇으로 능력을 발휘하여 소위 밥값을 하고 살런지 모르겠다. 스포츠 선수나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 분야에 뛰어난 무엇이 보인다던데 누구나 그런 것쯤 하나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던데 도대체 무엇이냐. 뛰어나지 않아서 발견이 안되는 것일까.

뭐를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봤어. 라는 말도 있는데 모든 것을 다 경험시켜줄 수가 없으니 나는 아무 것도 해 주지 않는 엄마다. 그것은 제주 시골에서 5년을 살며 터득한 것이다. 바닷가에 놀러가면 아이들 둘이 모래놀이를 하고 물놀이를 실컷 하다가 각자의 놀이 방법으로 끝이 난다. 큰 아이는 모래바닥에 앉아 시를 쓰고, 작은 아이는 모래로 도시를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식이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다르구나.

저 아이는 글로 남기는 걸 좋아하고, 이 아이는 그림으로 표현할 때 더 즐겁구나.


나 혼자 아이들을 관찰하다가 작은 아이와 외출할 때는 필기구를 항상 챙기고, 큰 아이에게는 책을 슬쩍 추천하는 방법으로 돕고 있다. 돕고 있다는 말이 맞다. 이들도 나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뛰어난 능력 혹은 천재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말릴 수 없을 만큼의 열정을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열정은 대부분 말려진다. 숨기면 숨겨진다. 나는 어땠나. 나 역시 뭐 별로 끝내주게 잘하는 건 없었다. 그렇다고 막 산 것도 아니고, 그 때 그 때 집중해야할 것들에 열심을 쏟으며 살았다.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좋다.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목표한 적도 없으니 꿈을 이루었다고 해도 될까. 그렇다면 아이들도 능력, 재능 찾기에 몰두하지 않아도 될까.


엄마가 되고 아이들을 돕는 역할을 맡고 보니 나 자신 보다도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감도 크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게는 헤매는 시간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돌아보면 내가 헤맨 시간 조차 낭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음에도 그렇다.


'잠재력을 키워드립니다.'


작은 녀석의 그림 열정은 엄마가 보기에 그저 귀여운 집중력일 뿐이겠지. 그렇지만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혼자 탐구하는 것이 기특하여 학원을 보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다만, 미술 입시를 방향으로 하는 것은 아니기에 오히려 어렵고 막막하다.

동네에 미술학원을 찾아보았는데 대부분 수상경력과 미술입시 성과를 광고하고 있다. 썩 내키지 않았으나 나에게 편견이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전화상담도 해 보았다.

아이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주겠다고 한다.


잠재력.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숨어 있는 힘 또는 능력.


드러나지 않는 능력을 발견하는 능력이 그에게 있다는 뜻인가. 보이지않는 그것을 찾아주고 키워주기까지 한다니 몹시 혹한다. 잠재력이 있긴 한건지 불안한데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투로 찾아준다고 공언하다니. 게다가 잠재력은 가능성보다 어쩐지 덜 가능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 알아보고 키워준다는 것일까. 궁금한 게 너무 많다. 하지만 정신 차려야 한다. 이건 광고 멘트일 것이다. 아이를 보지 않았고 작품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아이와 상의해보고 필요하면 방문하여 상담하겠다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엄마가 모르고 본인도 모르는 내재된 능력을 찾아주는 것은 진짜 값진 능력이다. 그의 말이 맞다면 나는 아이를 그에게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그 학원의 소개에는 온통 어느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해마다 예고 혹은 예대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합격했는지가 빼곡하다. 아이의 숨겨진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입시에 맞춤한 스킬을 잘 가르치는 곳이란 게 나의 결론.

몇 군데 더 전화를 해보려고 메모해두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아직 발현되지 않은 귀한 능력, 잠재력을 애미의 기대와 불안에 이용하는 말에 넘어가지 않겠다.


드라마 속 웅이가 미술학원을 다녀 실력을 키운 것이 아니듯. 내가 나로 만족하고 사는 것이 뛰어난 어떤 능력을 보여서가 아니듯. 잠재된 능력이 발견되면 좋겠고, 영원히 뭍혀 모르고 살더라도 내가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 어른으로 자라길. 아무 것도 없는 제주 바다에서 나만의 기쁨을 찾던 기억을 잊지않길.


크게 웃었던 짤을 하나 남겨본다. 어쩜 딱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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