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이모같은 고모는 있다.

by 그때그대

태어나보니 오빠가 있었다. 내게 오빠 보다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처음 생각한 건 유치원 무렵이다. 언니와 같이 인형놀이를 하는 친구가 부러웠기 때문인데, 커 갈수록 옷과 신발 또는 악세사리를 몰래 하고 나가는 일로 싸움이 잦은 것을 보고 오빠가 낫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다시 자매가 부러워진 것은 오빠의 결혼 이후다. 곧 태어날 나의 조카가 나를 ‘고모’라고 부르게 될 것이지 않나. 내가 고모인 것이 싫다. 이모이고 싶다.


아빠의 여자 형제를 ‘고모’라고 부르니 나는 ‘고모’가 맞다. 그저 ‘이모’가 아닌 것이 크게 아쉬울 뿐이다. 호칭의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조카들이 나를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어른 말고 다정하고 살가운 어른으로 대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보다 바쁘고 키도 더 커버린 조카들은 명절이 아니면 가족 누구의 생일날이어야 넉넉히 얼굴을 본다. 이번 추석에는 첫째 조카가 저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다며 내게 고민상담을 해 와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십대 소녀가 썸 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편하고, 내 편이고, 믿을 만하다는 뜻이 아닌가. 나의 추구미. '이모같은 고모' 라고 생각해도 될까.


‘이모’는 우리 사회에서 혈연관계를 넘어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을 만날 때 본인을 ‘이모’라 칭하고, 아이에게 엄마 친구를 소개할 때도 누구 이모라고 소개한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이모’라고 부르며, 심지어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셀럽의 자녀에게 나는 ‘랜선이모’가 되어있다.

대중문화에서 이모는 가족 내 조력자, 엄마 편, 약간 허당미 있는 친구같은 어른으로 묘사된다. 반면 고모는 도시적인 고모, 자수성가한 고모 같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지난 해 방영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여자주인공의 고모 역할을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보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해인의 고모’라고 명시되어 있다. 중년배우를 이모˙고모상 배우로 구분하며 캐릭터화 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이미지 속에 오랜 세월 각인된 무엇이 있나보다.


유교적 질서를 강조하며 사회가 급격히 보수화하는 과정에서 여자가 시집을 가는 형태의 결혼제도가 자리를 잡아 ‘시집살이’라는 간난고초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 탓에 고모는 엄마에게 시누이이므로 어려운 존재였을 테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지 않는가. 엄마의 기분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니, 엄마가 불편해하는 고모에 대한 감정 경험이 학습되고 사회의 문화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조카들에게 친근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어른이고 싶은데, 고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나를 드라마 속 쎈캐 고모로 여길까 걱정했다. 그것은 조카가 아니라 나의 걱정이자 편견이라 믿고 있다. 고모라 불편해할까봐 움찔하던 것들 다 하련다. 문구덕후로써 취향이 같은 조카에게 문구류를 한아름 안겨줄 것이다. 팝업에 같이 가고, 너희들의 유행어도 배우고 싶다.

정작 왜 나는 고모에게 존대를 하고 이모에게는 반존대를 하며 어리광을 부릴까. 전통적으로, 문화적으로 오래도록 이어진 이미지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답은 찾은 것 같다.

내가 올케에게 ‘시누이 짓’을 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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