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ing 테라/루나)
국제거시경제학에는 삼불원칙(Trilemma)이 있다. 개방경제에서 세 가지 바람직한 정책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원칙이다. 세 가지 정책목표는 1) 환율 안정성(또는 고정환율), 2) 자유로운 국내외 자본이동, 그리고 3) 통화정책의 자율성이다.
환율 안정성: 대내외 거래가 활발한 개방경제에서는 외국통화와 국내통화간 상대적 가치, 즉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상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은 수출대금으로 수취한 외화를 국내 통화로 교환한 후 이를 회사 운영을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 때 어떤 이유로든 국내 통화의 상대적 가치가 크게 상승한다면 원자재 대금, 인건비 등 국내 통화로 지급해야하는 생산비용이 늘어나 이윤이 감소하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수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정적 환율은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유로운 국내외 자본이동: 재화 및 서비스 수출입, 대내외 투자 등 경상 및 자본거래를 위해서는 국경간 자유로운 자금이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고 경제 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통화정책의 자율성: 통화정책은 재정정책과 더불어 중요한 거시경제안정화정책중 하나이다. 경기가 안좋을 경우에는 통화량을 늘려 (금리를 낮춰) 경제를 부양할 수 있고, 경기가 너무 좋을 경우에는 통화량을 줄여 (금리를 올려) 경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국내 경제상황에 맞게 통화정책방향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경제 안정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건전한 경제발전에 기여한다.
이러한 세가지 정책목표는 아래와 같이 삼각형의 꼭지점으로 나타낼 수 있고 삼불원칙에 따르면 삼각형의 한 변만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율안정을 위해 고정환율제를 선택한 경제에서는 자유로운 국내외 자본이동과 통화정책의 자율성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유로운 국내외 자본이동을 선택한 경우에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기 위해 외화의 유입이 많은(적은) 경우 중앙은행은 외화를 매입(매도)해야 하고, 거래결과 국내 통화의 공급(흡수)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국내 통화의 공급량이 경제상황에 맞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화자금의 유출입에 따라 결정된다. 반면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선택하는 경우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려면 자본이 유입되거나 유출되는 양을 조절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이러한 삼불원칙은 암호화폐에도 또는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생태계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을 예로 들어 보자.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생태계 입장에서 비트코인의 가격은 여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대비 비트코인의 상대적 가치, 즉 환율로 볼 수 있다.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2,100만개)과 발행 프로토콜은 프로그램으로 확정되어 있다. 아울러 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사고 파는 것이 자유롭다. 이 두가지는 비트코인 생태계 내 통화정책이 (자율적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자금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삼불원칙에 따라 비트코인과 법정화폐간 환율, 즉 비트코인의 가격이 특정수준에 고정되기 어렵다.
또 다른 예로 최근 가격이 폭락한 테라(Terra)와 루나(Luna)를 들 수 있다. 테라는 미달러화와 교환비율이 1:1로 고정되도록 설계된 알고리듬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는 테라를 사용하는 생태계 입장에서 고정환율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삼불원칙에 따라 테라 생태계에서는 자유로운 자금이동과 통화정책의 자율성중 하나만 선택이 가능하다. 테라 역시 법정화폐로 자유로운 매매가 가능했다. 이는 테라 생태계로의 자금의 유출입이 자유로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삼불원칙에 따라 1:1로 고정된 환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테라의 공급량, 다시 말해 테라기반 통화정책이 자금의 유출입에 따라 종속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를 갖을 수밖에 없다. 테라의 특징은 이러한 종속적 통화정책이 루나와의 교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만약 테라에 대한 수요증가로 그 가치가 1달러를 상회하면 1달러만큼의 루나를 1테라로 교환한 후 1달러와의 차이만큼 수익을 올린다. 이 때 테라의 공급이 늘어나 그 가치가 1달러로 하락한다. 반면 테라의 그 가치가 1달러를 하회하면 1테라를 1달러 상당의 루나와 교환한 후 차익을 실현한다. 이 때 테라의 공급이 줄어들어 그 가치가 1달러로 상승한다. 결과적으로 테라의 공급이 자금유출입에 따라 결정되어 삼불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테라와 루나의 가격 폭락 사건은 실패한 고정환율제의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그랬던 것처럼 통화의 상대적 가치를 고정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안전자산인 금을 바탕으로 통화간 상대적 가치를 유지하려 했던 브레튼우즈체제도 선진국간 합의와 노력이 있었음에도 실패했다. 국제통화인 미달러를 바탕으로한 태국, 아르헨티나 등 개도국들의 고정환율제도 실패했다. 하물며 안전자산도 없이 알고리듬만을 기반으로 고정환율제를 추구했던 테라와 루나 역시 성공하기 어려웠던 실험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