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미화

by 둘리

가끔 생각이 난다. 그때의 기억들


참 불행했었다. 불행. 그래 불행이라고 표현해야할 것 같다. 그 어느 것도 이것보다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같은 선로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갈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도 어느 순간 권태로움에 사로잡혀있을 때쯤 문득 너는 나를 생각에 사로잡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도 이 순간만큼은 기대하지 않았다. 끝을 알고 가는 것보다 알지 못한채 방황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마냥 해답을 쉽게 물지는 못했다.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면 차가운 얼음을 씹을 때처럼 밀려오는 시린 두통이 나를 더 깊게 만들었다.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저 눈빛 너머로 서로 다른 곳을 주시하는 듯한 그 눈을 보았을 때 나는 어느정도 짐작했다. 예상치 못하게 하루아침 죽음이 앞당겨진 시한부의 작별 소식이 고리타분한 일상의 작은 충격정도로 느껴지듯 나에게도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 그것은 권태감도 식은 감정 때문도 아니었다. 어쩌면 미리 예고하는 듯한 작은 이스터에그를 한 껏 무시해온 결과일 것이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만큼 시시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나에게 그 사람은 그것마저도 행복이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말해준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 시시한 것이었던 게, 모든 걱정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된 기분이었다. 그 눈을 보기 전까진. 그 시간마저 이젠 사라졌다. 아니다. 어쩌면 원 상태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권태는 나에게 있어서 나쁜 것이 아니었다 적당한 크기로 줄어든 사탕이 입안에 남아 잔잔하게 향을 풍기고 있을 때 느끼는 안정감처럼 권태는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잔잔하게 나를 지긋히 눌러주었다. 우는 아이에게 등을 슬며시 쓸어내리는 부모의 손처럼, 적당한 온기에 더위도 추위도 느끼지 못한 채 조용히 잠기는 눈꺼풀을 온 몸에 맡기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가끔 게으름이나 싫증이 나를 깨울 때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미운정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오히려 같은 온도를 느끼고 있었던 너와도 같은 권태를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마치 서로 알고 있다는 듯 눈감아 주던 그때가 역설스럽게도 안정감있는 권태였다.


나는 몰랐다. 사랑에는 끝이 있듯이 권태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기울어진 식탁에 마주앉은 우리에게 애써 밀려오는 감정들을 주워담아보려했던 것도, 그간 함께했던 시간들의 정때문은 아니었다. 나의 맘은 여전했다. 단지 그 사람의 권태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뿐이었다. 마감일에 닥치면 불안에 애써 등떠미는 것처럼 나의 감정들도 좁혀진 목구멍에 밀려온 토사물과 비슷한 것이었다. 애써 참아보려해도 참아지지 않는 그 무언가였다.


만났던 기간보다 감정을 나열했던 기간이 더 길게 느껴진 것도, 불행이 길다고 느껴졌던 것도 별다른 특별한 이유는 아니였다. 단지 이별의 과정이 조금은 길게 지연되었을 뿐이었다. 폭설로 기다리는 열차가 멈춰버린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얼어오는 손발이 시렸을 뿐이었다. 이별이 오는 것보다 나를 덜어내는 것이 더 나았을 뿐.


마침내 도착한 열차에 허무한 감정만이 맴돌때 쯤, 손발이 시린 것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객실의 따뜻함이 나를 더 시리게 만들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서로 다른 온기를 느끼는 것도 꽤나 아픈 것이었다. 분명 그랬던 것이, 이제와서 나의 단잠을 깨우는 걸까, 불행이라 굳게 믿어왔던 것이 이제는 객실 속 따뜻함으로 밀려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느꼈던 것이 이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창 밖 한 없이 초라해진 나의 새뻘건 손에 작은 연민을 느낀다.


마지막 그녀의 눈물이 이젠 알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