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지 않는 머리카락
머리카락만 자라면 되는데!
'내 딸의 딸'이 이제 12개월이 되었다.
지난해말 퇴직 전 모시고 있던 외국인 사장님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독일에 있는 자기 손자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한참 하길래 나도 질세라 '내 딸의 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Beautiful Boy'라고 했다. 내가 'Girl인데요!'라고 하자 아차! 싶었는지 놀라며 재빨리 다른 화제로 전환을 하였다. 약간 기분이 상했다.
그럴만하겠다. 머리카락이 거의 자라지 않아 아주 짧은 머리카락이었기 때문에 남자아이로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딸의 딸'을 데리고 공원에 나갔는데 '손자가 귀엽게 생겼네요!' 란다.
가슴이 미어진다.
아직 계절이 겨울이라 외출 시에는 항상 모자를 씌우니 여자아이로 잘 알아본다.
그런데 실내에서 모자를 벗고 있으면 천상 남자아이로 본다.
지금은 40대가 된 큰형님네 여조카도 처음 낳았을 때 돌 때까지도 머리카락이 없어 남자아이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내 딸도 돌이 될 때까지 머리카락이 거의 자라지 않았던 것을 앨범에 있는 옛날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옛날 큰 조카가 돌 무렵까지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자 큰형수님은 어디서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일명 "' 바리캉으로 완전히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면 더 빨리 자란다"라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와서 어린 조카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어버렸었다. 그런데 웬걸! 머리카락이 한동안 자라지 않고 그대로여서 더 민망한 상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얼마 후 정상적으로 자라기 시작하여 한숨을 덜긴 했다.
내 딸은 집에 거의 오지 않으면서 '내 딸의 딸' 동영상 찍어 보내라는 수시로 보챈다.
찍어서 보내면 사위와 딸이 합창을 한다. 동영상을 보고 이렇게 예쁜데 머리카락이 자라면 얼마나 더 예쁠까!라고 카톡으로 푸념회신이 온다.
나는 안다. 이것은 우리 집안의 유전이란 것을..... 큰 조카와 내 딸을 지켜본 결과다.
'걱정 마라!' 내 딸과 사위에게 12개월이 지나면 머리카락이 잘 자랄 것이라고 장담하며 위로했었다.
어! 그런데 '내 딸의 딸' 머리카락이 아직까지 그대로다. 나도 살살 걱정이 된다.
머리카락아 어서 빨리빨리 자라거라!
아침마다 '내 딸의 딸'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도해 본다
* '내 딸의 딸'은 약 5개월 될 때 내 딸이 사위와 함께 해외출장을 가게 되어 잠시 맡아 주기로 하고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데 12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눌러앉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