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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미 Feb 28. 2023

개화_홍진의 편지

소설연재_정희를 닮은 여성

언더우드 박사에게 


언더우드 박사, 나 홍진이요.


우연한 계기로 머나먼 내일이자 미래라고 하는 곳에 다녀왔소. 스코필드는 우연한 계기가 블랙홀 발생으로 인한 시간 왜곡현상이라 하더이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가 기여한 일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이오. 


그들은 우리의 시대를 기억하는지. 신념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던 벗이 죽음으로 심었던 씨앗이 개화한 시대를 눈으로 보고자 했소. 그것을 느끼기 위해 광화문으로 가보고 싶었소. 


세상은 정말 놀랍도록 변해 있었소. 사람은 사람 위에 층층이 쌓아가며 살더이다. 언더우드 당신이 얼핏 설명했던 ‘아파트먼트’ 인지가 실재한다면 저렇겠구나 생각했소. 아, 그리고 윌리엄 테일러 양반이 팔던 물건 있잖소. 쉐보레인지 뭔지. 테일러 상회에서 팔던 것 말이오. 그것이 거리에 즐비하더이다. 그리고 속력감과 다양성이 경성의 것과 비교할 수도 없었소. 


여성들은 신여성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았소. 여성들도 일을 하고 자유롭게 입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우리 시대 외치던 신여성의 가치가 구현되고 있는 것 같더이다. 이외에도 수백, 수 만 가지가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이내 주어진 시간 안에 광화문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이 나서 걸음을 재촉하였소. 


광화문에 도착해 보니 수많은 인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소. 벅찬 숨을 고르던 찰나. 한 여성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표정으로 피켓을 들고 광장 한 복판으로 걸어오더이다. 그녀는 멈춰 서더니 자신이 들고 온 피켓을 번쩍 드는 것 아니겠소.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는 다르지만 분명 이렇게 쓰여있었소. 


[나는 당신을 혐오합니다] 


그녀는 큰 목소리로 피켓에 적힌 글자를 또박또박 읽었소. 나는 당신을 혐오하노라고.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고 또 한 번. 나중엔 마치 절규를 하는 듯하게 소리치더이다.


그러자 어디서 돌멩이가 하나 날아왔소. 돌멩이는 그녀의 발 앞에 멈춰 서더니 그녀의 반복적인 외침만큼이나 돌이 계속 날아왔소. 돌멩이는 그녀의 머리에 얼굴에 팔과 다리에 닿더니 붉고 푸르게 그녀의 몸을 잠식해 갔소.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입고 간 겉옷을 벗어 펼친 뒤 그녀에게 날아오는 돌멩이를 막아보았소. 돌팔매질이 멈출 기세가 없었기에 나는 큰 소리로 외쳤소. 


“이 보시오들. 이 처자의 말에 당신들은 일말의 거리낌도 없소? 그런 사람만 돌을 던지시오. 그럼 내 대신 맞을 터이니.” 


나도 모르게 언더우드 당신이 해준 이야기가 나에게 데자뷔 되는 것 같았소. 먼 이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며 말해주던 말 말이요. 누군가 죄지은 여인에게 돌을 던지니 당신이 믿는 신이라는 작자가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는 말이오. 나는 당신처럼 그 책을 매일 읽지는 않으니 잘 모르지만 그 장면과 비슷하다 느꼈소. 


무튼, 그 여성을 부축하며 괜찮냐 물었더니, 그녀는 울고 있었소. 그래서 내가 많이 아프냐고 물었더니 여성이 그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결국 서로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길 그리고 먼저 어떤 것을 이뤄내기 위해 살았던 이들의 삶이 너무 무력해질 거라고 울더이다. 서로를 혐오하는 것을 인정하는 방법만이 화해와 상생의 첫걸음일 것이라고. 서로 반목한 역사는 전쟁만이 남았었다고 서럽게 울더이다. 


언더우드. 당신도 이 편지를 읽으며 느낄지 모르겠소. 그녀는 정희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말이오. 정희가 살아있다면 정희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았다면 이 여성 일 것만 같았소. 자신도 누군가를 혐오한다고 머뭇거림 없이 말하면서 스스로 다음의 지향점을 그리는 모습이 때문이었던 것 같소.


며칠 전 정희의 무덤 앞에 뒤늦게 갖다 놓은 오래된 편지가 기억이 났소. 많이 늦어도 좋고 당장이라도 좋으니 내가 알아볼 모습으로 분명히 다시 와 달라 했던 그 편지 말이오. 


나라의 독립이니 하는 것은 돈 있는 사람만 하는 고상한 가치라고,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 하는 일이라 아둔하게 생각한 나를 바꿔놓은 사람이 정희였소. 정희와 함께하던 순간엔 몰랐지만 그녀가 떠나고서야 절절히 느낄 수 있었소. 내가 틀렸다는 것을.


광화문에서 만난 여성은 마치 정희가 여전한 모습으로 어떠한 시대든 다른 외관이어도 또렷하게 존재할 것이라고 알리는 것 같았소. 물론 교리와 신의 뜻이라는 것을 믿는 언더우드 당신은 전적으로는 공감 못할지도 모르오. 


그러나 언더우드. 돌아와서 들으니 당신네의 종교라는 것도 서로 나뉘어 싸운다지요? 그래서 우리 눈엔 다 똑같은 파란 눈의 성직자들도 각자 출신이 다르다 들었소. 하지만 조선 땅에선 교파의 싸움을 내려놓고 당신들이 말하는 선이란 가치를 이루기 위해 자주 모여 협력한다고 들었소. 내가 다시 돌아오고 나서도 언더우드 당신이 그 일 때문에 바빠 항상 만날 수 없단 소식만 들려오니 말이오. 


언더우드. 우리의 일기를 계속 써 내려가는 것은 어떠하오. 그것이 내가 그녀를 안전한 곳에만 옮겨놓은 채로 후세에 개화기로 불리는 오늘로 돌아온 이유요. 내가 할 일을 찾았소. 우리 끊임없이 기록을 남깁시다. 격동의 시대 나와 당신이 혐오를 넘어서 지키려고 했던 가치는 무엇인지 계속 적어 내려갑시다. 그리고 믿어봅시다. 언젠가 이 기록들은 내가 다녀온 시대에서 읽힐 것이라고. 아마 그것이 우리 남은 생에 마지막 과업이자 가장 원대한 신념일 것이라 생각하오. 


이만, 편지를 줄이오. 언더우드.


곧 뵙기를 바라오.

 

1922년 경성에서

홍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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