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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미 Feb 28. 2023

개화_밧줄에 목이 묶인 남자, 재수

소설연재_죽음을 향하여 달리는 생

재수는 말 그대로 진고개에 버려졌다. 조선총독부 군인들이 한 차례, 진고개의 일본 남성들이 한 차례 짓밟고 간 재수의 몸은 마치 봉제 인형에서 뜯어져 나온 솜처럼 흐물거렸다. 재수는 흐릿해져 가는 시야의 초점을 회복하는 것이 의식을 또렷이 하는 일이라 생각해 부어오른 눈을 힘주어 부릅떴다. 


그리고 나선 당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간신히 움직여 자기 목을 조이는 밧줄을 끌러내고자 했다. 손을 밧줄에 집어넣어 공간을 확보하니 재수의 흉부와 배가 부풀어 올랐다. 드디어 숨이라는 것이 재수의 몸을 휘감았다. 


재수는 밧줄을 쥔 손을 바닥에 떨구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였지만 좁은 틈으로 보이는 하늘은 마지못한다는 듯 매우 파랗고 그 광경은 재수가 죽기에 가장 완벽한 날인 것 같았다. 


그때 재수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 중 조선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그저 시대에 순응하면 목숨은 부지할 것을…”


“대단한 독립운동을 해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군사학교와 대학교를 만드는 모금 운동을 하다 밀정한테 걸렸다지. 무언가 이뤄보지도 못한 개죽음 아닌가. 일본 놈들 웃는 거 보게나. 이러려고 태어났는가. 최소 이런 웃음거리로 죽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몇 달 전 처형된 안중근도 해주의 집안이 없었다면 그런 인물이 될 수 없었을 거네. 독립이든 뭐든 당장 자기 앞날의 걱정이 없어야 하는 일 아닌가.” 


재수는 자기를 에워싼 목소리를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들었고 자조적으로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재수는 그저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파란 하늘에 집중했다. 


그 순간 재수는 하늘에서 섬광을 보았다. 궁극에는 빛의 파동이 번개처럼 재수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빛은 점점 커져 재수의 몸만 한 크기를 이루었고 형체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빛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갈 수 있겠느냐.” 


재수는 이 순간을 몇 번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유력한 가문이나 재력이 없는 하층민이 독립운동이라는 대의를 품는 순간부터였다. 


그러나 재수가 느끼는 기시감은 연습과 실제는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생생한 두려움이었다. 가보지 않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로 간다는 것은. 


두려움 속에서도 선명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모금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유일하게 지지해 준 사람은 재수의 아내와 여덟 살 난 딸뿐이었다. 아내는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타박하지 않았으며, 그가 매번 가져오는 뭉칫돈을 수상히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 조국과 독립을 중얼거리는 남편을 바라보며 자기 일을 할 뿐이었다. 딸도 아비를 보채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 유일하게 떠오른 것은 같이 모금하던 동료들도, 의병도 아니고, 바로 재수 자기 처자식이었다. 재수는 그러한 걱정을 전달하였다. 


“막상 두려움은 없으나 다만 한 번도 이름 불러주지 않은 아내 옥주와 어린 딸 정희가 걸리오. 다정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내가 없는 곳에 남겨둬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소. 내가 없는 곳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살라는 말도…그 영겁의 시간은 분명 고통스러울 것이오.” 


빛 가운데 다시 음성이 들렸다. 


“지금은 바로 네 자유의지로 이뤄낸 결과이자, 신의 계획이자 섭리다.” 


빛이 말을 마치자 거대한 섬광이 일어났다. 그리고 재수는 섬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엔 어엿한 처자로 성장한 정희가 있었다. 그리고 정희는 천막이 드리워진 마당이 심히 넓은 초가집으로 향했다. 


“언더우드, 나 왔소.” 썩 들떠있는 목소리였다.

 

“정희, 어게인. 이름 말고 목사라 부르거라. 그리고 조선에선 내가 네 할아버지뻘이 아니냐.” 언더우드는 일상이라는 듯이 답했다. 


“미국인이 지금 조선의 예법을 따지는 것이오? 유어 컨츄리에선 서로 편하게 부른다 하지 않았소. 예배 준비나 빨리합시다.” 


정희의 으스대는 말에 언더우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고단함은 없는 듯이 뭐가 저리 매일 즐거울 꼬. 이상한 나라 조선에서 참 이상한 아이로구나.’ 


“목사님요. 저 천막은 뭡니까. 마당 한구석을 크게 차지해서 불편하지 않겠소. 홍진이도 오기로 하였으니 접어서 한쪽으로 치우겠습니다.” 언더우드의 마음을 모르는 듯한 정희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언더우드는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그곳은 지성소다. 신과의 대면의 자리지. 건들지 말거라.” 


언더우드는 정희를 여덟 살 때부터 보아왔다. 언더우드는 진고개에서 일어난 사건을 신문을 통해 읽었고, 그들에게 처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기독교 내 인맥을 풀어 정희와 옥주를 찾았다. 그리곤 그들을 만났을 땐 어떠한 도움이 필요한지 옥주에게 물었다.

 

옥주는 남편을 잃은 슬픔도 언더우드의 위로에 안도감도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은 이제 생계를 꾸려야 하니 아이를 지근에서 보살펴 달라고 말했다. 언더우드는 그때부터 정희의 후원자가 되기로 했고, 정희를 연희전문학교에 입학시켜 신식 학문을 배우게 했다. 


오후가 되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언더우드는 이미 기운이 노쇠했지만, 예배 때는 항상 하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단상에 서서 설교를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지금의 조선은 어둡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등불은 절대 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국 땅의 사람이자 하늘의 사람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랄 것이고, 불행한 순간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 누가 건져주었으면 한다면 신은 있는 게 나을 겁니다. 이것은 땅의 관점이자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신의 관점에선 스스로 있는 자라 결국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늘의 관점이자 신의 생각입니다. 


그런 신 앞에 나아가 여러분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십시오. 억울하면 억울하다. 무엇을 바라면 바란다. 해보십시오. 신은 언제는 대답을 할 것이고, 언제는 침묵할 것이며 언제는 자신을 가려 존재성을 의심하게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물어보십시오. 


노아도 한 사람으로서 신에게 물었고, 욥도 홀로 신에게 묻다 지쳐 신을 원망했을 때 응답받았으며, 모세도 떨기나무 앞에서 홀로 받은 신의 대답으로 4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해보지 않는 것보다 해보는 게 낫다면 해보십시오. 


신 앞에 솔직하게 독대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신을 보는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깨닫게 되며 세상이 넓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듯 여러분도 조선도 역경을 이기고 다시 세워지길 오늘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성도들이 형용할 수 없는 감화를 받은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예배가 끝났다. 여인과 사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한 주의 삶과 목사님의 영험함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이내 속에 있는 말이 다 풀어진 이들은 집으로 향했다. 정희는 나가는 성도들에게 떡을 쥐여주며 인사를 했다. 


“어머 저 아이 여기 있었구먼. 그 몇 년 전 진고개 사건 말이오.”


“어미는 어디 가서 첩실이 되고 아이는 반반하니 명월관에서 술이나 따를 줄 알았건만… 독립운동 한 가족들이 조선 땅에서 살아남는 경우는 없지 않았소.”


“그러니 언더우드 목사의 자애로움이 이렇게 크다는 거 아니겠소. 저 아이를 거둬, 먹고 자고 입히며 친딸처럼 여기며 학교를 보내고 얼마나 애지중지를 한다는지. 미국에 데려갈 것이란 소문도 있소.” 


정희가 인사를 하기 위해 내렸던 고개에 박힌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저것은 틀린 말이다.‘ 


그러나 정희는 고개를 들 때는 환한 미소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샬롬." 


말을 뱉자 정희는 배가 심히 아파 자신도 모르게 배를 부여잡았다. 찰나에 정희는 본인의 마음과 말이 거꾸로 나갔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때의 홍진은 정희를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 정희는 옥주가 잠들고 나서 집을 빠져나와 교회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이 낮에 본 천막이었다. 그곳엔 나무로 만든 십자가와 거대한 대자가 붙어있었다. 


[1. 무릎을 꿇을 것/ 2. 눈을 감을 것/ 3. 신을 아버지라 부를 것/ 4. 주기도문을 외울 것/ 5.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것.] 


정희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 앞에 바짝 다가가 무릎을 꿇고 연희학교 예배시간에 배운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기도문을 다 끝내기도 전에 정희는 자신만의 주기도문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는 것은 무엇이며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의 육신의 아버지를 데려가신 것은, 언더우드가 나의 일용한 양식을 먹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의 작태에서 전 누구를 용서해야 하며, 나의 나라 조선은 어떤 시험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까. 다만 모든 악에서 구하소서…모든 악에서…

 

친아버지가 진고개에서 돌아가신 이후 늘 죽음이 저의 목뒤에 서늘히 서 있는 듯했습니다. 아버지가 죽는 과정을 지켜보던 큰아버지는 몇 해 되지 않아 스스로 세상을 등졌나이다. 그 순간 죽음은 목에서부터 귓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속삭였나이다.

 

‘나는 너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네가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더욱이 선명해진다.’고 말입니다. 


죽음을 향해 달리는 생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삶은 달라졌고 날들은 소중해졌습니다. 그것이 주어진 날들에 유일한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다만 비옵기는 설령 세상이 말하는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당신이 지키라 한 열 가지 계명을 어기더라도. 나에게 신이 하나이듯, 당신께서도 획일함이 아닌 나를 온전한 하나로 심판하여 주옵소서. 


나의 동기를 보시고, 상황을 보시고, 내가 바랐던 신념을 보옵소서. 감히 바라옵건대… 결국 쓰러지더라도 그 길을 도우소서. 아멘.” 


기도를 마치자 정희는 강렬한 감정이 마음속에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지성소로 나가는 순간부터 정희는 돌이킬 수 없이 무언가를 결심했다. 그것은 재수가 갔던 길과 비슷해 보였다. 정희는 마치 자신의 앞날을 보는 사람처럼 결연하면서도 담담하게 지성소 천막을 빠져나갔다.

 

섬광이 다시 크게 번쩍하더니 재수는 진고개에 누워 빛과 대면했다. 빛 가운데 다시 음성이 들렸다. 


“이제 진정 갈 수 있겠느냐.” 


재수는 부르튼 입술로 미소를 뱉었다. 


“그럼, 당신은 저들이 말하는 천사요?” 


빛은 경건하고도 거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것은 네가 알 수 없으나 선택은 주어질 것이다. 너는 나를 따라 너를 부르는 세계로 가겠느냐? 아니면 입자와 파동이 되어 이곳에 남겠느냐.” 


재수는 힘겹게 입을 벌려 무언가를 말하였다. 


“나는 그저 바람으로 이곳에 남겠소. 그래서 정희를 봤던 장면을 다시 보고 옥주가 웃는 날에 선선하게 한 바퀴 감싸주겠소. 그리고 이 땅의 태어날 사람들의 숨결을 담는 바람이 되겠소.” 


빛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번쩍였다. 그 순간 재수의 영혼과 지성은 재수의 육체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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