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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Jun 20. 2024

불에 타버린 꽃산

지켜보는 이의 눈물도 피눈물

사람들이 머물러 쉬기도 한다는 꽃산에 그가 갔다. 그는 나의 진짜 친구였다. 며칠 전 사람들의 기억과 서사에 대한 책을 읽었다. 거기서 어떤 한 여성을 인터뷰했는데 어디가 진짜 고향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여행으로 딱 한번 가 본 폴란드를 자신은 진짜 고향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타인이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다면 그녀는 단 한번 가 본 폴란드를 진짜 고향으로 느꼈을 것이다. 거기가 그녀의 정신적 안식처이자 출발점일 수 있다는 말이다. 


나와 그는 나이차이가 꽤 나지만 그를 친구라고 여겼다. 그는 나를 너무나 닮아있었다. 그가 말하는 것들에서 예민한 나는 그의 슬픔을 눈치챘다. 그리고 우린 서로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켜봤다. 그랑 같이 설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그는 숨이 벅차다며 자꾸 주저앉았다. 그러나 나는 기다리고 음료를 건넸다. 그의 뒤에 있는 배낭의 무게가 나보다 무거워 보여서. 각자 다른 산을 타고 오다가 갑자기 같이 만나버린 산이 그에게는 고도가 너무 높아 보여서. 그렇게 멈췄다가 오르다가를 반복하다 그는 그만 오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와본 듯한 고도이지만 그에겐 너무 높았다. 혼자가게 될 길이 두려웠지만 소중한 친구가 여기까지 같이 와준 게 고마웠다. 그래서 조심히 내려가길 바랐다. 근데 그가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왠지 불안해졌다. 내려가는 그에게 나의 남은 식량까지 준 상태였지만 왠지 그는 이 산을 올랐어야만 하는 사람 같아서. 느낌이 그래서 불안했지만 간절히 빌었다. 제발 아무 일이 없이 꽃산에 이르기를. 그리고 편히 쉬기를. 


그리고 단단히 무장을 하고 올라가던 나는 눈이 녹은 지대에 도착을 했다. 그래서 잠시 숨을 돌리고 그가 있을 꽃산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맞은편 꽃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에이, 아닐 거야. 연기는 좋은 일에도 피어오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저 정도는 금방 꺼질 거야.'라고 되뇌었다. 


다시 산을 오르다가 연기가 마음에 걸려 수신호를 보냈다. 그랬더니 연기 사이로 구조신호가 보였다. 그리고 연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니 산이 불에 타고 있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다.


꽃산엔 그를 노리는 사기꾼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산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 그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기꾼들도 그들에게 속삭였다.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설산에 오르지 말고 많은 사람이 있고 안락해 보이는 이곳에 오라고 말이다. 그런데 불이 나자 사기꾼들은 제일 먼저 도망쳐 그곳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불길 속에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내게 구조신호를 보내왔다. 


'어떻게 반응해야 될까? 날 두고 사기꾼들의 꼬임에 넘어갔으니 쌤통이라 해야 될까? 그가 넘어온 산은 설산을 같이 오르면서 대화를 한 나만이 알 텐데...' 


사기꾼의 넝쿨이 그의 발목을 잡았을 때 나는 그 넝쿨에 대해 그와 얘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내려간다고 할 때 말릴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건 통제고 개입이니까. 그도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니까. 근데 그는 자신의 발에 묶인 넝쿨을 끌러서 나와 동시에 묶을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발에 감겨오는 넝쿨을 알았고 더 이상 풀 수 없는 환경이 되자 눈 감고 꽃산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그럴 위인이었다. 


안전할 줄 알았던 꽃산에서 사기꾼들은 더 이상 그에게 얻어낼 것이 없자 그를 옷가지를 뜯었으며 그를 버리고 산에 불을 질렀다. 나는 녹아버린 물을 최소한으로 챙겨서 그에게 가기로 했다. 


"불을 대신 꺼드리기엔 화력이 너무 세네요. 근데 이 정도의 물이면 불이 당신의 몸을 태우진 못할 거예요. 당분간은. 꼭 살아남아요." 그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글썽이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불이 다 꺼진 잿더미의 산이 된다면 나는 그에게 진정한 안녕을 건네야 한다. 그리고 꽃산은 아직 불에 타고 있을 것이다. 물을 건네고 온 이후로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역할이 아니므로. 


사기꾼은 믿은 사람이 잘못이라며 가책이 없이 도망갔고 일부는 그럴 줄 알았다며 조소했다. 마치 아무 행동도 안 한 자신들이 더 현명하고 안전한 곳이라고 웃는 중이었다. 나만 아는 친구의 서사가 연기처럼 흩날려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존재만으로 설산에서 안정감을 주던 나의 친구의 고통을 지켜본다. 


설산으로 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조금이 아니고 펑펑 났는데 그 색은 붉은색이었다.  오직 우리 둘에게만 기록될 색의 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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