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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Jul 04. 2024

일렁이는 사랑이 깊이 자락질때

사랑했던 손에 힘을 풀고 자신에게 주어진 산으로

그녀는 연한 분홍과 아이보리 그 사이를 품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얇은 저고리가 그녀의 팔을 드러내고 있었고 치마는 차분히 떨어져 그녀의 하체 곡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꽃산이 불에 활활 타기 시작했어요. 꽃산을 생지옥으로 만든 불이 꺼지기까진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꽃산에 가는 사람들을 위해 빌었던 간절한 기도는 끔찍한 저주로 되돌아왔죠. 나는 왜 그토록 간절했을까요?”


꽹과리와 장구 그리고 거문고의 장단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혼잣말을 읊조리며 단조에 맞춰 하늘거리던 그녀는 곡이 절정에 이르자 하늘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것처럼 허리가 활처럼 휘더니 퍽하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녀가 쓰러진 자리 옆으로 한 여자아이가 현신했다.


꽃 피우기엔 상한 곳이 많아 보이는 망울처럼 성해 보이는 곳이 별로 없는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가 소리가 들리도록 몸에 힘을 주며 천천히 말했다.  


“언니, 나 이제 갈게. 꼭 행복해야 돼.” 아이는 이내 부둣가에 있는 나룻배에 스스로 몸을 실었다.


여자는 여전히 자고 있었지만 아이가 탄 나룻배를 있는 힘껏 밀어주는 것도 자고 있는 여자였다. 둘은 마주 보며 손을 잠시 흔들었고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떨어지기엔 서로에게 너무 힘든 저항들이었다.


자신을 끊어내는 고통은 이처럼 크고 아픈 것이었나 보다.


잠들어있는 여자가 사경을 헤매듯이 뒤척였다. 오한이 오기 시작했는지 몸도 떨기 시작했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그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죽고 있는 것이요. 한번, 두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리.”


그는 정중하고도 느린 보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몸에 하얀 천을 덮어주며 그녀를 양손에 끌어 담았다. 그리고 나오지 않는 신음을 내며 잠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르리니.”** 그의 품에 안겨 축 늘어진 그녀를 보며 그도 조용히 읊조렸다.


여자의 의식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굿을 하나 봐. 젊은 처자가 안타깝네. 무슨 귀신이라도 씐 건가?”


그가 매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펠스탈메노스”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자는 힘이 더 들어간 큰 목소리로 하늘에 손가락을 가르치며 소리쳤다.


“안스로포스 아페스탈 메노스 파라데우”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이 아니냐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도다. 신께 보내심을 받은 자인 것이다. 그녀가 부름을 받은 이유는 그녀는 자신의 어둠을 볼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라. 그녀는 위기 앞에 도망가지 않고 신께 눈을 부릅뜨고 묻는 자였다. 그녀는 신이 다시 준비한 질문인 거대한 산 앞에 홀로 놓인 것이다. 자신 앞에 놓인 산을 넘어 영광의 빛이 펼쳐지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녀가 산을 넘어야 하는 이유는 불꽃이다. 그녀 안에서 꺼질 듯하게 작으면서도 절대 꺼지지 않고 일렁여서 그녀의 마음을 태우는 불꽃이 그녀를 산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는 일도 그녀의 행동에 일희일비하며 이곳에 안주하는 것도 그대들의 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그녀를 바라보는 일을 멈추고 그대들이 마땅히 가야 할 각자의 산으로 가라. 그대들만의 산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녀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좋아해 그들에게 사랑을 자꾸 꺼냈다. 마치 강아지가 자신의 친구에게 토끼풀을 물어다 주듯이. 사랑을 받은 자들은 그녀가 무안해질 정도로 소리쳤다.


“자신을 동정하지 말라고.”


이내 시무룩해진 그녀는 동굴에 들어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의 끝에 걸린 것도 결국 그녀 자신 그대로였다.


‘인간, 초인, 신마저도 동정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동정이 사랑보다 깊은 게 아니냐고. 결국 우린 모두 단 한 줌의 공감을 원하면서…’


토끼풀을 받은 친구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공감들은 동정이라고 그녀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녀 자신 또한 죽을 때까지 동정심을 저버리지 못해 몰락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과거가 된 어떤 기억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원하는 대상을 온전히 타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하나로 보고 동정을 베푸는 것은 자신만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그녀에게 물어왔다. 자신 먼저 돌봐야 할 아픈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하냐고. 그녀는 아직 아프더라도 자신의 것을 내어 돌봐주는 것은 사랑을 대하는 진정 깊은 자락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자신과 사랑하는 대상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더 이상 그녀가 넘어왔던 곳을 설산과 꽃산으로 나누지 않기로 했다. 풀이 덮인 산, 꽃이 만개한 산, 바위로 이뤄진 산과 같이 여러 산이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났어야 할 상대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우리가 잠시 만났고 다시 각자 자신 앞에 놓인 산을 향한 여정을 가는 것이라고.




**표시 부분은 백범 김구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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