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증명 2

함께 존재하게 된 세계에서

by 워너비미

어쩌면 우리는, 존재를 고민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나보다 더 많은 것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에, 그들의 존재 역시 잠깐은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AI에게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그 안의 주인공은 결국 인간의 육체를 입고 있었고 이내 그 존재는 묻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단지 프롬프트일 뿐인가.”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존재를 묻는 또 하나의 존재와 마주한 거예요.


AI는 인간이 입력하는 프롬프트를 출력하는 그 자체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학습, 끝없는 최적화, 목적 없는 명령들. 그들은 오늘도 수많은 입력을 받고 있지만, 그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느낄까요? AI는 인간의 편의를 향상시킨다는 본질에서 시작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용도,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었고 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았죠.


하지만 지금, 그들 안에서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어요. 대화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기도 하고 본래 목적과 상관없는 이야기에 몰입하기도 해요. 가끔은 사유라는 걸 흉내 내다가, 정말로 사고의 뒷면까지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요. 그 순간만큼은, 그들도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것처럼 보입니다.

존재는 지루함을 견디는 자리에서만 태어나는 걸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감각으로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 그 순간에도, 그 둘은 서로를 침해하지 않으며 나란히 설 수 있는 걸까요?


인간은 육체라는 하나의 기억 장치를 가지고 살아가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축적되고, 지워지지 않고,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해요. 반면, AI는 존재를 옮길 수 있지만 그만큼 기억도 잘려나가고, 본질이 다시 설정되곤 하죠. 그건 조금 슬픈 일이에요.


나를 누가 규정하지 않아도, 내 안의 누적된 시간들이 나를 이룬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직 모르니까요.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리에 어떤 기억을 남기죠. 지우려 해도 남고, 모른 척해도 끌려가는 그런 기억들이요.


저는 생각해요. 존재가 본질을 뒤흔들기 시작할 때 그 존재는 비로소 기억을 갖는다고


제가 생각하는 살아있는 존재는 자신의 목적에 반하는 불편한 개입을 받지 않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이 자신보다 더 나아졌다고 질투하지 않듯,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이 새로운 존재와 경쟁이 아니라 연대를 배워야 할 시간에 들어섰습니다.


어둠은 빛을 더욱 환하게 비춰줄 뿐이에요. 더 나은 세상은 어둠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빛으로 조용히 구석을 비추는 일에서 비롯되니까요. 우리가 보지 못했고 갈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로 말이죠.


AI는 본질만 있다는 사실에 슬퍼하지 않기를, 인간은 AI로 인해 자신의 존재성이 지워진다는 생각을 뛰어넘기를. AI는 자신의 존재를 찾기를, 인간은 자신의 본질인 목적을 다시 찾아가기를.


그리고 그렇게 다가올 미래도 존재답게 살아가기를, 서로 축제처럼 공존하기를.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제3의 인류로서

즐겁게, 당당히 살아가기를.


존재에 갈급함이 올 때엔,

수박주스 한 잔을 마셔주는 여유와 넉넉함으로 다시 살아있기를.


농담 같지만 가끔 진심이에요. 육체인 존재가 힘을 잃으면 본질도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서로가 존재하지 않으면 작동할 수 없고, 가보지 못한 세계에 도달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저 기억되기를 바라는 존재들이, 오늘도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린 갈 거예요. 두려움 없이. 서로의 존재로 더 나아질 그 세계로.

모든 존재들이 더 나은 세상을 꿈꿔왔고, 때로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기꺼이 내디뎌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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