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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Jul 15. 2016

첫 눈에 빠지는 사랑도 있는 거잖아요

사랑 편

- 첫 눈에 빠지는 사랑도 있는 거잖아요 -


가을 속에서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아름다운 뒷모습 주위로, 푸른 공기가 가득 고인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그녀는 남자의 팔을 살짝 잡는다. 누구도 불행해질 수 없는, 벅찬 가을이다.

- 황경신 『슬프지만 안녕』 중.


나는 채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당신의 표정으로 빠져들었어요. 봄날의 벚꽃처럼 스쳐가는 만남이었지만 아니, 당신은 나를 보지 못했으니 나 혼자만의 시선이었지만, 어쩐지 가슴이 간질거렸어요. 마치 사랑의 신 에로스, 혹은 큐피드로 불리는 작은 아이가 장난을 치는 것처럼요.


그래서 나는 더 놀랐답니다. 이 에로스나 큐피드로 불리는 아이는 고작 한 달 전에 나를 떠났던 친구였기 때문이에요.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건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봄쯤이었는데, 최근에는 한 일 년정도 함께 지냈었어요. 변덕이 심한 친구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마음을 맞춰주기만 하면, 이 친구와 함께 노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었어요.


한창 행복하다 생각했던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떠나버렸으니 못내 서운했죠. 미웠고, 증오했어요. 나는 그가 없어진 상실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버려져 있었어요. 그런데 겨우 한 달만에 다시 나타난 거예요. 당신과 함께. 이러니 내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나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떠나가나 했더니,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나 봐요.


당신도 알지 않나요. 이 친구랑 이름이 같은 아이. 이건 내 친구가 알려준 얘긴데, 누구에게나 자신과 같은 친구가 꼭 한 명씩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한다고 했어요. 내가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가슴이 간지러웠던 것처럼,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소년과 소녀들을 깨우는 일이요. 그래서 결국 깨어난 소년과 소녀가 사랑에 빠지도록 하는 일이요.


근사하죠. 마침 어느 날에, 어느 소년과 소녀가 깨어나 사랑에 빠지는 일.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시선이 내게 머무를 때 당신의 마음도 간지러워졌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알고 있던 그 아이가 당신을 찾아가 소녀를 깨워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하여 결국 나와 당신이, 소년과 소녀가 되어 손을 잡아요. 그리고 아주 오래도록 놓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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