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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Jul 14. 2016

사라진 계절과 그날의 이야기

이별 편

- 사라진 계절과 그날의 이야기 -


가장 잘하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절실했던 것이 가장 아프게 나를 배반한다. 가장 가까이 있던 것들이 가장 멀리까지 도망가버린다.

- 백영옥, 『애인의 애인에게』중.


그해 겨울은 치열했다. 짧았고, 향긋했고, 아름다웠고, 이내 부서졌다.


겨울이 세상을 얼리는 동안 J의 마음은 이미 여러갈래 조각난 파편이 되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혼자 남겨져있는 상태가 두려웠지만, J는 앞으로도 자신이 파편으로 남아있길 바랐다. 또다시 부서지는 일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J는 쓸쓸하고 외로웠지만, 고요했고 잔잔했다.


그러다 K를 만났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하자면 K가 J에게로 왔다. K는 허리를 굽혀 파편을 줍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나타나 자신의 파편을 다시 끼워 맞추고 있는 K를 보며 J가 웃었다. 그래서였다. 겨울에 만난 K를 봄이라고 부르던 이유는. 겨울이었지만 초록이었고, 추웠지만 따끈했다. 무서웠지만, 조심조심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물론 사랑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사랑했던 과정은 생략하고, 결국 다시 한 번 부서진 J의 파편들을 들여다보자. J가 부서지던 날 K에게 들었던 마지막 대사는 안아줘. 였다. J는 '산산이 부서지는 마당에 안아주기까지 해야 하다니.' 하고 생각했다. '나는 잘게 조각나 오래도록 상흔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할 텐데 안아달라니.' 하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금 파편이 되어 눈이 찢기고 팔다리가 뜯기고 가슴마저 분리된 후에는, 자신이 꼭 K를 안고 싶어 질 것 같았으므로 결국 마지막 온기를 나누고 말았다. 아주아주 짧은 순간. 어쩌면 성의 없어 보일만큼 냉담하고 무신경하게.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떨어지고 싶지 않았을 테니 그랬을 테다. 그대로 K에게 녹아들어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테니 그랬을 테다.


온기를 나누던 작업이 끝난 뒤 마지막 품을 떠나는 K를, J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슬쩍 훔쳐본 K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고, J는 말했다. 치열했고, 짧았고, 향긋했으며 아름다웠던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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