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말을 걸긴 걸었는데, 뒤늦은 쑥스러움들이 몰아친다. 이런 말 아무한테나 쉽게 건네는 가벼운 사람은 아닌데, 오해하면 어쩌지.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는데 가만 보니 이 여자, 예쁘다.
내 어깨 정도 올 것 같은 키였고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몸. 반질거릴 정도의 윤기를 머금은, 검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입술은 작고 얇아 귀여웠으며, 적당히 하얗고 깨끗한 피부였다.
파란 체크무늬 남방에 흰 면바지를 입었고 손목엔 팔찌 대신 가죽 시계가 감겨있다. 게다가 수줍게 웃을 땐 오른쪽 볼에만 보조개가 생겼고, 치열이 아주 가지런했음은 물론이다.
만약 공연장에서 다시 만난다면, 정식으로 연락처를 묻고 싶을 정도로 인상이 좋았다. 정말로 이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생각은 이미 여기까지 와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여자는 책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인사직무로의 취업을 희망하고 있었다. 다만, 이제 입사 1년 차의, 그것도 방금 우연히 만난 남자의 이러쿵 저러쿵은 불편해할 것 같아 쓸데없는 아는 척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주제로 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이 때부터는 여자의 눈과 목소리에 집중하느라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급한 속도로 난 분홍빛 감정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징- 하고 친구의 연락이 왔다. 어색하고 궁색한 대화였지만 나쁘지 않았는데. 친구가 와서 이만 가봐야겠다는 의사표현을 해놓고도 이해할 수 없는 아쉬움들이 내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또 만나게 되면, 저랑 내일도 만나주실래요?"
결국 바들바들 떨면서 말해버렸다.
분명히 멍청이 같이 보였을 거다.
곧 카페에서 나와 친구를 만났다. 굳이 방금 전까지의 기분 좋은 해프닝을 설명하진 않았다. 농담이나 우스갯거리의 대화로 만들 만큼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으니.
공연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는 일부러 뒷 좌석을 골라 앉는다. 친구 녀석은 앞에 자리도 많은데 왜 뒤에 앉으려고 하냐며 불평이었지만, 역시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다.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고 조명은 어두워졌는데, 내 눈은 짐짓 필사의 기세로(도대체 왜 그리 열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여자를 찾고 있었다.
'파란 체크.. 파란 체크..'
"!!!!"
눈이 번쩍 뜨이면서 내 시야에 그 여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
스스로 난도질했던 마음 한 구석에
새순이 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