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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Aug 19. 2016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

사랑 편

-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 -


탁. 탁. 탁.
대나무 숲 사이로 비쳐 나오는 작은 불빛을 따라 그곳까지 걸어와 문을 두드린 사람은 작은 소녀였습니다.

- 황경신, 『아마도 아스파라거스』중.


무거운 하루를 짊어지고 있다가 내려놓는 시간이 밤 열한 시. 하루는 그제서야 가벼워진다.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시간이 이십 분 남짓. 어두운 산길을 돌아가야 하는데, 그날따라 달빛에 반짝이는 해바라기 꽃 다섯 송이가 눈에 띄었다. 일평생 하나의 존재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숙명이, 그리하여 달빛이 드는 밤엔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있는 그 도도한 모습이, 어쩐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떠올렸다.


이게 다 손 때문이다. 그녀의 손이 아주 예뻤기 때문이다. 꼭 피아노를 쳐야 할 것처럼 얇고 길며 하얀 손이었다. 또 몇 번의 스침을 느끼며 그녀의 손이 내 것보다 더 따뜻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잡고 싶은 손이었다. 물론 늘씬한 키라던지 부드럽고 개구진 미소를 담은 입매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녀의 손이야말로 진정 놀라운 아름다움이었다. 


내가 그 아름다움에 탄복하고 있을 무렵에,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꽤 능숙하고 편안하게. 어린 나이답게 당돌하고 거침없이. 다가왔다고는 해도 그것이 애정의 형태라기보다는 적당한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함으로 보여 못내 아쉬웠지만, 어찌 되었건 나의 감정이 그녀에게로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니 그 정도의 관계조차 만족스러웠다.


그러니 나는 그녀를 계속 보고 싶었을 게다. 태양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오직 태양만을 좇는 해바라기처럼, 그녀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그저 나 혼자. 그래서 나는 별 수 없이 소망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기를, 그 삶을 조금 더 깊이 볼 수 있기를, 그녀 역시 나와 시선을 맞춰 주기를.


마치 사랑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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