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편
- 아주 특별한 수리공 -
남은 시간은 사십 분 정도였다. 가게의 폐점 시간이 열한 시였고, 나는 열 시 이십 분쯤에 밀크티 한 잔을 주문했으니. 오랜만에 먹어 보는 밀크티가 식기 전에 그가 와주길, 하고 생각했다.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기억 수리공이었다. 세상에 그런 직업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전 찾았던 술집의 바텐더 덕분이었다. 하얀 피부에 귀여운 인상이었지만 눈매만큼은 날카롭게 생긴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대부분이 지루한 이별 이야기였는데, 가만히 내 말을 듣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고 처음 꺼낸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수리공에 대한 것이었다.
"기억 수리공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그게 뭐죠?"
술이 반쯤은 차오른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바꾸고 싶은 기억을 하나 골라 원하는 대로 고쳐주는 사람이에요.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를 만나거든 고쳐달라고 해보세요."
"그래야겠네요. 이미 말했다시피 내 기억은 지금 엉망진창이거든요."
기억을 고친다니,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지만, 또 그 자리에서 했던 이야기 중 말이 되는 게 얼마나 있었을까, 생각하니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를 만나려면 당신에게 의미 있는 장소로 가셔야 해요. 취하면 안 돼요. 아침부터 온종일 고치고 싶은 기억 하나만 떠올리는 거예요. 힘들겠지만 꼭 그래야 해요. 기억이 선명해야 고치는 것도 수월하거든요."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자리를 옮겨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럴 수 있다면 꼭 고치고 싶은, 꼭 바꿔 놓고 싶은 기억이 하나 있는 터라 속는 셈 치고 그녀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회사원이었다. 신입사원의 면접이 잡혀있는 날이었고 나는 면접을 진행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여덟 명쯤 되는 면접 대기자들 틈에 그녀가 있었다. 내가 면접 안내를 하던 장소는 마침 창가 근처였는데, 창을 너머 들이친 햇볕이 온통 그녀에게로 쏟아지는 통에 나는 손쓸 틈 없이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런데 하필 그녀가 합격한 탓에 우리는 점점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점점 식사를 하는 일이 많아졌고, 점점 목소리를 듣는 일이 많아졌고, 아침 저녁으로 안부를 묻게 되었고,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고, 서로의 삶을 나누게 되었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방향을 달리하여 이별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그 날의 기억을 바꾸면, 이토록 지긋지긋하고 홀로 아련한 이별 따위를 멈출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결론.
손을 대면 앗 뜨거, 할 정도의 밀크티가 미지근해질 때쯤, 그가 나타났다. 그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지만 나는 대번에 그임을 알아보았다. 그가 내 앞에 있던 의자를 빼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말했다.
"그날의 햇볕을 지워주실 수 있나요?"
"그것뿐입니까?"
"네. 그날, 그렇게 눈부신 햇볕이 창을 넘지 못했더라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끼어들었다.
"아마도…."
나는 자신이 없는 투로 대답했고 이어서 그가 말했다.
"주문하신 일이 어려운 작업은 아닙니다만, 작업을 마치고 나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유념하십시오."
"잠깐만요. 원하는 대로 다 바꿀 수 있는 거 아니었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던 기억의 경우는 특별합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는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사실 당신이 사랑에 빠진 건 그날의 햇볕 때문이 아니라 그녀와 나누던 짧은 인사, 그녀가 버스에서 내리던 뒷모습, 그녀가 덮고 있던 담요 같은 것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꼭 그것을 지우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그가 말을 마쳤을 때, 생각은 전보다 복잡해졌다. 아프지만, 아름다운 기억이다. 아름답지만, 아픈 기억이다. 나는 폐점을 알리는 점원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기억은 그저 기억으로 남는다. 아프거나, 아름답거나.